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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안여행③
엄금희 기자 | 승인2017.09.24 18:31

청정 무안 연꽃축제 여행 초의 선사 차향의 숨결

초의 선사 탄생지를 둘러본다. 이 시대에 부활해야 할 그리운 임, 초의 선사의 팔십 평생을 수백 년의 시공간을 초월하여 만난다. 초의 선사 탄생지를 발로 밟으면서 그 호흡까지 닮고 싶다.

우리가 흔히 차를 알려면 초의를 알아야 한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동다송'이라는 차책을 기록으로 남겼기 때문이다. '동다송'이란 동다, 즉 우리나라 차를 칭송한다는 뜻이며 그 시대 차의 모든 것을 기술한 차의 전문서적이다. 지금도 육우의 '다경'과 비유해 차를 즐기는 모든 이들이 일독하고 있다.

▲ 무안군 삼향읍 왕산리에 복원된 초의 선사 유적지 안내도이다. 초의 선사는 이곳에서 태어나 15살에 출가해 참선과 수행을 통해 다도를 정립하고 회화에 능통해 조선 후기 대선사로 명성을 떨쳤다.

그 '동다송'은 해거도인의 청에 의해서 초의가 기록한 것이다. 때문에 두 사람의 관계가 특별하다고 봐야 한다. 날마다 마시는 차이지만 어찌 초의 선사를 모르고 마실 수는 없다.

옥천의 진공이 나이 여든에도 얼굴빛이 복사꽃 같았다. 이곳 차의 향기는 다른 곳보다 맑고 신이하여 능히 젊어지게 하고 고목이 되살아나듯 사람으로 하여금 장수하게 하리라.

초의가 우리 차를 노래한 '동다송'에 적혀 있는 글이다. 그런가 하면 당나라 사람 육우는 그의 저서 '다경'에서 이렇게 말했다.

▲ 초의 선사 유적지의 초의 차 다구 전시장이다.

차는 성품이 지극히 차서 행실이 바르고 검박하고 덕망이 있는 사람이 마시는 데 적합하다. 만약 열이 있고 갈증이 나거나 속이 답답하고 머리가 아프거나 눈이 침침하고 팔다리가 번거로워 뼈마디가 잘 펴지지 않는다면 네댓 번만 마셔도 제호나 감로처럼 효과가 있다. 차는 산천의 신령스러운 기운을 받아 가슴을 열며 체기를 씻어 맑고 화창한 기분을 내게 한다.

2000년에 가까운 차 문화 역사를 가진 우리 민족에게 자랑스러운 문헌인 차승 초의 선사의 '동다송'에 대한 이야기는 우리에게 지혜를 전한다.

▲ 초의 선사 유적지의 대각문이다. 초의 선사 유적지 경내로 들어오는 입구에 세워진 문이다. 대각이란 크게 깨닫는다는 뜻이다. 이곳에 온 사람들은 이 문을 통과하면 모두 큰 깨달음을 얻으라는 대각문이다.

초의 선사의 '동다송'은 그동안 수없이 해석되고 구전되어온 차시의 고전이다. 이런 고전에서 초의 선사의 문향을 읽는다. 초의 선사가 생각하는 차의 세계, 차의 철학을 고스란히 잇고 있는 '동다송'이야말로 우리나라 차 문화의 자존심을 지켜줄 실로 중요한 자료다.

조선 후기 민멸 위기에 놓인 우리 차의 우수성을 복원, 차 문화를 중흥시킨 초의 선사가 고민했던 차의 정신이 무엇인지를 그의 유적지를 둘러보며 생각한다.

▲ 초의 선사 유적지의 대각문을 지나 만나는 왕산 봉수대와 좌우에 차밭이 있다.

차는 신라 말 유입되어 고려 시대까지 왕실과 사찰 중심으로 차 문화가 형성됐다. 그러나 조선시대의 통치이념의 변화로 배불 정책을 쓰게 되면서 차 문화도 쇠퇴일로를 겪게 되어 조선조 말에는 극소수의 수행승들 사이에서나 그 명맥을 잇고 있었다.

그러한 때에 초의 선사는 차의 이론을 정립하고 선다의 제다법을 복원해 초의 차를 완성하고 당시 중국 차만을 알고 있던 지식인들에게 우리 차의 우수성을 인식시켰다.

▲ 초의 선사 유적지의 생가이다. 초의 선사의 시 '귀 고향'에 따르면 생가는 이미 생전에 폐허가 되었고 가까운 형제의 후손들이 남아 있었다. 복원된 생가는 전형적인 시골 마을의 초가삼간이다. 선사는 열다섯 살 때까지 이곳에 살다 나주 운흥사로 출가했다.

차에 대한 관심과 애호를 이끌어 낸 것은 승려이면서 조선 후기 유학자들과 시와 차를 통해 교유한 초의 선사다. 성리학이 주도하면서 신분제도가 엄격했던 조선 후기 유학자와 승려의 가장 활발한 교유는 추사 김정희와 초의 선사의 만남이다.

추사 김정희와 초의 선사는 1815년 수락산 학림암에서 처음 만나 숙연을 짐작했다고 한다. 추사가 정치적 위기 속에 유배 길에 올랐을 때 해남 일지암에서 만나 차 한 잔을 나누며 서로의 마음을 주고받았다. 이진포 나루에서 유배지 제주로 떠나는 추사에게 급히 그린 '제주 화북 진도'를 건네며 배웅하기도 했다.

▲ 초의 선사 유적지의 보제루이다. 초의 선사의 차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곳이다. 널리 중생을 제도한다는 의미의 '보제'는 조선 헌종 임금이 초의 선사에게 내려 준 호인 '대각등계 보제존자 초의대선사'에서 따왔다.

"서로 사모하고 경애하는 도리를 잊지 않았다"고 할 만큼 추사 김정희와 초의 선사의 우정은 깊었다. 이 밖에도 다산 정약용, 동악 이안눌, 석주 권필, 월정 윤근수, 보한재 신숙주 등 조선 시대 유학자들과 교유를 만난다.

유적지에서 초의 선사의 생애, 수행, 저술로부터 시작해 그가 조선 후기 차 문화를 중흥할 수 있던 배경을 살펴본다. 또한 초의 선사가 차의 이론을 연구하고 직접 차를 만들며 다도를 정립해 초의 차를 완성한 모습을 그의 제다법, 탕법, 장다법을 들여다본다.

▲ 초의 선사 유적지의 용호백로정이다. 서울 용산에 있었다는 추사 김정희의 정자 용호백로정을 이곳에 복원하였다. 용호는 용산의 옛 지명이고 백로정은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산자락에서 백로가 노니는 모습을 본다 하여 붙인 이름이다.
▲ 초의 선사 유적지의 초의 선원이다. 차로써 몸가짐을 다스리고, 선으로는 깨달음을 얻는다. 초의 선사의 차 철학 명선이다. 다도와 참선을 수행한다는 뜻이다. 초의 선원은 특별히 참선과 다도 수련을 위해 지은 목조 건물로 앞면 7칸, 옆면 3칸에 팔작지붕을 하고 있다.

초의 선사가 경화사족들과 교유하며 음다 기층을 확보해 간 양상이 서간문 등에 나타나 있음을 보여 주고 마지막으로 끽다거의 선다 전통을 이은 초의 차가 누구에게로 계승되었는지 초의 차의 계보를 알게 한다.

초의 선사의 삶의 숨결이 담긴 '동다송', '다신전', '일지암시고' 등과 초의 선사에게 보낸 유학자들의 간찰, 초의와 교유했던 인사들의 문집을 초의 선사 기념관에서 본다. 초의 선사의 유품 목록인 '일지암 서책 목록'을 통해, '동다송'의 저자로만 막연히 알고 있는 초의 선사의 위대성은 차 문화를 일으킨 총체적인 모습이다. 이를 알려주는 최초의 연구서가 '일지암 서책 목록'이다.

▲ 초의 선사 유적지의 초의 선사 박물관이다. 초의 선사 삶의 숨결을 들여다볼 수 있는 공간이다.

초의 선사와 유불의 교유사는 긴 역사를 이어가는 동안 끊어질 듯 이어졌다. 억불의 조선시대에도 실제 학문의 지혜를 갈고닦던 사람들의 인간미 넘치는 만남은 끊어지지 않았다. 따뜻한 인간애로 맺어진 우정은 시공간을 초월한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 초의 선사 유적지의 명선관이다. 우리나라 차 문화를 전반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다문화관이다. 초의 선사의 차 철학인 '명선'을 건물 이름으로 사용하였다. 차로써 몸가짐을 다스리고, 선으로는 깨달음을 얻는 집이다.

Tip
청정 무안 초의 선사 유적지 찾아가는 길 주소: 전라남도 무안군 삼향읍 초의길 30
전화: 061-285-0303

엄금희 기자  ekh@travel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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