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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가 있어 사랑받는 여행지들
주성열 교수 | 승인2017.12.04 16:13

리듬만 들어도 멋진 장소를 연상케 하는 노래들이 있다. 나폴리, 산타 루치아, 로렐라이, 소렌토로, 샹젤리제, 셸부르그, 다뉴브 등이 아름다운 가사와 선율로 유명한 장소들이다. 미디어 매체나 광고, 영화로도 잘 알려진 도시들은 어딘지 정확히는 몰라도 슬픔을 간직하거나 밝은 태양이 빛나는 항구의 모습 등 가사와 리듬이 그리는 이미지로 먼 나라 사람들의 마음에 오래도록 남는다.

철학자 버클리는 “존재한다는 것은 지각한다는 것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실존적 가치를 지닌 존재는 색다른 인상을 가질 때 더 특별하게 마음으로 다가와 존재하며 존재하는 모든 것이 불변의 대상은 아니므로 우리가 갖고 있는 표상으로서 인식할 때만 존재한다는 주장이다. 평범한 장소가 특별한 사건이나 새로운 인상이 만들어져 이미지로 확산되면 주목받는 장소 혹은 실존적으로 인식되며, 노래를 통해 특별한 장소로 일순간 변용되기도 하는 것이다.

장기적인 도시 이미지의 생성과 구축은 문화관광에서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한 번 각인된 이미지는 좀처럼 지워지지 않는데 각인된 도시 이미지에 대한 흥미로운 사건과 연구도 있다. 2003년 39살의 한 일본 여행자가 파리(Paris)의 지저분한 모습에 충격을 받아 파리시를 상대로 법원에 고소한 사례가 있다. 여행자는 아름다운 파리를 동경했다가 실망감으로 크게 분노했던 것이다. 역사적인 도시 프랑스 파리, 특히 지하철 역사의 내부는 우중충한데다 고약한 냄새가 코를 찔렸을 것이고, 사람 사는 곳의 일상적인 불결함 등이 낭만적인 파리를 꿈꾸었던 여행자에게 충격으로 다가왔던 것이다.

2004년 일불의학협회 회장이던 마리오 르누에는 프랑스의 정신의학 저널 네르뷔르에 실은 논문에서 ‘파리의 도시 이미지’는 현실과는 거리가 먼 것으로 일본 내의 잡지, 방송 등의 대중 매체가 이러한 허상을 부추기고 있다고 했다. 대중 매체들이 화려한 수식어로 장식함으로써 패션과 예술의 도시라는 이미지가 생산되고 사람들은 가공된 이미지에 현혹되거나 자신도 모르게 믿음을 강화하게 됐다는 말이다. 이는 미키 마우스만을 알고 좋아하던 어린이가 살아 움직이는 쥐를 처음으로 본다면 아마도 그 충격은 엄청날 것이다.
 
일본의 정신과 의사 오타 히로아키는 1991년 출간한 저서에서 ‘파리 증후군(Paris syndrome)’의 개념을 다른 문화에 대한 적응 장애의 하나로 문화 충격에서 나타나는 신드롬이라 정의했다. 프랑스를 ‘예술의 도시’ 혹은 ‘유행의 발신지’라는 이미지로 동경해서 파리에서 살기 시작한 외국인 특히 일본인이나 관광객이 현지의 관습이나 문화 등에 잘 적응하지 못해서 정신적 균형 감각이 붕괴되고 주요 우울증에 가까운 증상을 보이는 상태를 가리키는 정신의학 용어이다. 또한 파리에서 겪게 되는 충격과 실망감 때문이라는 것과 도시에 대한 환상과 현실과의 괴리감 때문이라 설명하는 부분도 있다. 대부분은 소설이나 영화, 대중매체 등에 의해서 만들어진 파리의 이미지에 영향을 받은 것이 고착화 됐다는 말이다.

노래로 만나게 되는 장소도 별반 차이가 없어서 환상을 안고 방문한 사람들에게 실망감을 안겨 주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필자가 가본 나폴리 항구는 세계 제 1의 미항이라는 명칭이 어떻게 생겨났는지 의심이 들었고, 고생스럽게 찾아간 로렐라이 언덕은 생각보다 너무도 볼품이 없어서 긴 여정이 후회되기까지 했다. 물론 사람에 따라 노래만큼 혹은 그 이상의 감동을 얻어 오는 경우도 있고 낭만으로 가득한 곳에서 아름다운 추억을 채워 오기도 할 것이다. 결과가 어떻든 상상만 하던 공간으로의 여행은 즐거운 법. 이제 경쾌한 노래를 부르며 태양이 밝게 빛나는 항구와 음악이 있는 낭만의 거리로 여행을 떠나보자. 

최고의 음악 여행지, 나폴리와 주변 도시들
예로부터 감정 표현이 솔직하고 활달한 이탈리아 사람들은 그들의 노래 칸초네(canzone) 부르기를 즐긴다. 특히 나폴리를 포함한 남부지방은 그들만의 애향심으로 표현된 독창적인 민요가 많다. 나폴리 방언으로 부르는 노래 ‘나폴레타나(napoletana)’의 대표곡으로는 <오 솔레 미오>와 <먼 산타루치아> 그리고 <돌아오라 소렌토로>가 대중적으로 애창되는 곡이다. 애수가 담긴 나폴레타나는 그들의 추억을 포함하는 시대적 의미 또한 적지 않은데 노래의 대부분이 고향을 떠난 사람들이 이국에서 이상향을 그리는 향수 어린 망향곡이다. 이 곡들은 활달하고 감미로운 멜로디로 한국에는 물론 전 세계에 잘 알려져 있다.

나폴리 민요가 전 세계에 알려진 것은 1744년 이후 나폴리에서 매년 개최되는 민요제 때문이다. 이는 이 지방 어부들이 제례(祭禮)에 노래를 바치던 의식이 그 시초라고 하는데 메르겔리나 역 앞 피에디그로타 언덕 광장의 산타 마리아 피에디그로타 교회에서 매년 9월에 열리는 민요제가 가장 유명하다. 루이지 덴차(Luigi Denza)의 〈푸니쿨리 푸니쿨라〉(1880), 에드아르도 디 카푸아(Eduardo di Capua)의 〈오 솔레 미오〉(1898), 쿠르티스(Ernesto de Curtis,)의 〈돌아오라 소렌토〉(1902)와 〈머나먼 산타루치아〉(1919), 가르딜로(Salvatore Gardillo의 <무정한 마음(가타리 가타리)>(1908) 등이 이 민요제가 낳은 대표곡들이다. 이외에도 1953년부터는 나폴리 민요협회 주최의 ‘나폴리 가요제’가 매년 6월 초에 개최되는데 이 행사는 작곡을 중심으로 입선작은 이탈리아 방송협회(RAI)에 의해 전국에 소개된다. 이 외에도 이탈리아 북서부에서 1951년에 시작된 산레모 가요제도 유명하다.

<돌아오라 소렌토>: 노래로 그리는 소렌토

“보세요, 바다는 얼마나 아름다운가요. 거기에는 많은 감성이 감돌고 있네요. 그것은 마치 당신의 부드러운 소리처럼 내게 꿈을 꾸게 합니다. 나는 느끼네요, 정원에서 피어오르는 오렌지의 향기를. 사랑에 두근거리는 마음에 그 향기는 비할 데가 없지요. 당신은 말해요. ‘나는 떠납니다. 안녕히’라고. 당신은 내 마음의 사랑을 이 땅에 남긴 채 멀어져만 가는가요. 하지만 나에게서 달아나지 말아줘요. 나를 더 이상 괴롭히지 말아주세요. 소렌토로, 돌아와요. 내 마음을 아프게 하지 마세요.” <Torna A Surriento>

<돌아오라 소렌토>는 1902년의 피에디그로타 가요제에서 발표된 곡이다. 시인이며 화가였던 잠바티스타 쿠르티스(Giambattista de Curtis)가 작사를, 작곡은 27세였던 그의 동생 에르네스토 데 쿠르티스(Ernesto De Curtis)가 했다. 형은 당시 이 호텔의 주인이던 트라몬타노의 초청으로 호텔을 장식해 주기 위해 1891년 이곳에 왔고, 그 후 매년 6개월 정도 이 호텔에 머물면서 그림을 그렸다. 지금도 비토리오 베네토 거리에 있는 Grand Hotel of Guglielmo Tramontano’ 입구 안내판에는 “괴테, 바이런, 키츠, 셸리, 스콧트, 라마르틴, 롱펠로우 등이 머물렀고, 스토 부인이 〈소렌토의 아그네스〉의 영감을 얻었으며, 입센이 6개월간 머물면서 〈유령〉을 쓰기도 했다. 그리고 잠바티스타 쿠르티스(Giambattista de Curtis, 1860~1926)가 노래 〈돌아오라 소렌토〉를 이 호텔 테라스에서 작곡했다” 고 적혀있다.

소렌토는 만을 사이에 두고 나폴리의 대안에 있는 소렌토 반도의 항구로 나폴리어로 ‘수리엔토’라고 한다. 이 도시도 경치 좋은 관광지로 알려져 있는데 <돌아오라 소레토>는 소렌토 풍경의 아름다움을 찬양하면서 떠나가는 연인에게 “잊지 못할 이곳에서 기다리고 있나니 곧 돌아오라”고 간절하게 호소하고 있다. 쿠르티스 형제는 이후에도 공동으로 <머나먼 산타루치아>, 〈아 프리마보타〉 등 많은 곡을 만들어 명성을 떨쳤다. 소렌토 역 가까이에 잠바티스타의 흉상이 있고 맞은편에는 〈돌아오라 소렌토〉의 비석이 서 있으며 나폴리의 산타마리아 안테세쿨라 가에 두 형제의 생가 기념관이 있다.

<돌아오라 소렌토>에 관한 재밌는 에피소드가 있다. 1900년대 초 바질리카타 지방은 오랜 가뭄으로 인해 큰 피해를 보고 있었는데 1902년 9월 15일 이탈리아 수상 차나르델 리가 재해 현장을 순방하는 길에 소렌토의 임페리얼 호텔에 묵게 되었다. 소렌토 시장을 역임하고 있던 호텔 주인 트라몬타노는 수상에게 우체국을 하나 세워줄 것을 청원했다. 수상은 더 급한 일도 있는데 무슨 우체국이냐면서 역정을 냈지만 결국에는 그의 청원을 받아 들였다.

트라몬타노는 데 쿠르티스 형제를 불러 수상이 우체국을 세워주겠다는 약속을 이행하도록 노래를 만들어 줄 것을 부탁했다. 형제는 호텔 발코니에서 소렌토의 바다를 바라보며 짧은 시간에 노래를 만들었고 수상이 소렌토를 떠날 때 부르게 했다고 한다. 수상의 체류를 기념하고 당시 76세이던 수상이 생전에 아름다운 이곳에 다시 찾아오기를 기원한 노래였다. 그 후 이 노래가 나폴리의 가요제에 첫선을 보였고 세계적인 노래가 된 것이다. 약속대로 우체국이 세워졌고 노래는 유명하게 되었지만 차나르델리 수상은 소렌토를 재방문하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나의 태양, 오 솔레 미오(O sole mio)
“오 맑은 햇빛, 너 참 아름답다. 폭풍우 지난 후 너 더욱 찬란해. 시원한 바람 솔 솔 불어 올 때, 하늘에 밝은 해는 비친다. 나의 몸에는 사랑스런 나의 태양이 비친다. 나의 태양, 찬란하게 비친다.” O sole mio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세계적인 칸초네 나폴레타나 <오 솔레 미오>는 지오반니 카프로(Giovanni Capurro) 작사 에드아르도 디 카푸아(Eduardo di Capua) 작곡으로 1898년 나폴리 ‘피에디그로타 음악제’에서 우승했던 곡이다. 가사는 카푸로가 러시아에 1년 동안 체류하면서 나폴리의 밝은 태양이 그리워 쓴 것으로 사랑하는 이의 눈동자를 태양에 비유한 내용이다. 이후 테너 카루소에 의해 이탈리아 국민노래로 자리 잡았는데 아름다운 목소리를 지녔던 카루소는 음악을 통해 나폴리를 이탈리아 최고의 도시로 만든 셈이다. 남성 발라드 곡인 <오 솔레 미오>를 나폴리의 노래로 남긴 카루소는 나폴리의 위대한 영웅이 되었고 오페라와 대중가요의 거리를 좁혔다는 평가를 남겼다. 참고로 ‘O sole mio’의 ‘오’는 감탄사가 아니라 나폴리 원어의 관사다.

또한 1920년 앤트워프 올림픽에서 이탈리아 국가 대신 이 노래가 연주될 정도로 사랑을 받았다. 유명한 성악가라면 대부분 이 노래를 녹음했으며, 파바로티는 <오 솔레 미오>로 1908년 그래미상을 수상했다. 엘비스 프레슬리는 <It‘s Now or Never>로 리메이크해서 불러 음반 1,000만장을 판매하기도 했다. 이제 누구든 바다로 나가 밝은 태양을 맞이하면 저절로 입에서 나오는 세계적인 애창곡이 된 <오 솔레 미오>는 나폴리를 낭만적인 도시로 만든 훌륭한 홍보대사가 된 것이다.

관광객을 불러 모으던 노래 ‘푸니쿨리 푸니쿨라’
이탈리아 나폴리 인근에는 AD 79년에 화산이 폭발해 10km 정도 떨어진 폼페이(Pompeii)를 한순간에 잿더미로 만들어버린 1,281m의 베수비오 산(Monte Vesuvio)이 있다. 멀리서 보면 부드러운 두개의 봉우리가 아름답지만 1973년과 1979년 폭발 이후에도 계속 증기를 뿜어내는 분화구를 가진 활화산으로 언제 다시 터질지 모르는 위험을 안고 있다. 1845년 세계 최초의 화산 관측소가 설립되었던 역사적인 장소며 현재 분화구는 지름이 500m, 깊이는 250m로 아직도 군데군데에서 유황 가스를 뿜어내고 있다.

그런데 당시 영국의 관공 사업가였던 토마스 쿡(Thomas Cook 1808~1892)이라는 사람이 베수비오 화산 정상까지 케이블카를 설치하고 개통은 했는데 막상 사람들은 선 하나에 매달려 위험하고 무서운 활화산으로 끌려올라가는 등산전차의 안전을 신뢰하지 못했다. 엄청난 사업투자금과 성공의 꿈이 사라질 위기에 놓였던 그는 대안으로 노래를 만들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방법을 선택했다. 화산을 오를 때의 두려움을 경쾌한 노래로 잊게 만들면 누구나 편안한 마음으로 올 것이라고 믿었던 것이다. 드디어 적극적인 홍보와 노래를 통해 케이블카는 친숙한 관광전차로 변신했고 노래를 즐겨 부르던 사람들이 기꺼이 등산전차를 타려는 용기를 내면서 관광 사업은 크게 성공하게 됐다.   

그래서 만들어진 곡이 바로 <푸니쿨리 푸니쿨라(Funiculi Funicula)>다. 이태리어로 케이블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푸니콜라레(Funicolare)를 어원으로 나폴리 지역 사투리와 줄임말을 결합해 ‘케이블카 타고’라는 뜻의 감탄사적 표현이 제목이 됐다. 1880년 6월 6일 나폴리 베수비오 등산전차가 개통된 날 밤에 축하의 노래로 작곡됐으며, 그해 페디그로타의 가곡제에서 발표된 이후 세계적인 사랑을 받고 있다. 작사자는 당시의 나폴리 신문 기자로서 명성이 있던 주제페 투르고, 작곡은 루이지 덴차(Luigi Denza)가 했다. 타란텔라(6/8박자) 리듬의 춤곡으로 약동하는 듯한 반주의 리듬이 즐거운 등산의 느낌을 준다. 나폴리에서 12km 떨어진 베수비오 산은 활화산으로도 유명하지만 <푸니쿨리 푸니쿨라> 노래로 더 알려진 곳이 됐다.

‘무서운 불을 뿜는 저기 저 산에 올라가자. 그곳은 지옥같이 무서운 곳 무서워라. 산으로 올라가는 전차타고 모두가 올라가네. 떠오르는 저 연기, 오라고 손짓을 하네. 얌모, 얌모(가자, 가자), 놉파 얌모 야. 푸니쿨리 푸니쿨라..... 라고 비속어처럼 부르던 이 케이블카는 지각이 불안정하다는 이유로 1943년에 철거하게 됐지만,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이곳의 케이블카를 알리는 노래는 여전히 세계적인 인기를 끌며 불리고 있다. 지금은 미니밴이나 버스 그리고 몬스터 트럭버스로 갈아타고 매표소 도착 후 도보로 정상까지 올라간다.

노래와 만난 거리에서 사랑을 싣고 떠나다
누구나 겪을 만한 삶의 기쁨과 사랑 그리고 이별과 고통을 담고 있는 민요나 가요는 강한 공감대를 지속할 수 있어 오래 사랑 받는다. 노래에 지명이 들어가면 공동체의 공감대는 더욱 강화되는데, 이는 역사적이고 개인적인 의미를 담고 있어 더욱 구체적이다. 지역적인 축제에서 민요는 축제의 성격이나 공감대를 형성하는 데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 특히 성탄절 시즌이 다가오면 경쾌하고 감미로운 리듬의 캐롤이 축제를 더 아름답게 하고 사람들은 흥분과 설렘으로 정서를 공유한다.

우리의 애창가요 중에도 지역 정서를 담은 장소 이미지와 관련된 노래가 많다. 휴전 후 발표된 전쟁의 참상과 생활상을 고스란히 반영한 ‘단장의 미아리 고개’, ‘굳세어라 금순아’, ‘이별의 부산정거장’ 등은 고단한 삶에 큰 위안을 주었다. 이후 산업화 과정에서 서울을 동경하며 불렀던 ‘서울의 찬가’, ‘서울이여 안녕’ 그리고 소외된 지역에서의 삶의 희망과 슬픔이 애잔하게 배어있는 ‘흑산도 아가씨’, ‘소양강 처녀’, ‘울고 넘는 박달재’, ‘목포의 항구’, ‘이별의 부산정거장’ 등이 있다.   

송창식의 ‘고래사냥’을 부르면서 억압된 청춘들은 동해바다로 떠났었고, 김현철의 ‘춘천 가는 기차’를 타고 호반의 도시로도 떠났다. ‘부산 갈매기’를 바라보며 떠났던 사람들은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그리며 귀향한다. ‘섬마을 선생님’을 그리며 이별의 처연한 슬픔과 아픔으로 ‘목포의 눈물’을 흘리고 그리움으로 목포의 항구로 떠난다. ‘마포 종점’에 모여 술잔을 기울이고 ‘왕십리’에서 외로움을 위로 받는다. 젊음의 열정을 쏟아내며 비 내리는 명동을 걷다가 ‘안개 낀 장충단 공원’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다. 강남 개발의 시대에 ‘제 3한강교’와 ‘비 내리는 영동교’를 건너고, ‘신사동 그 사람’을 만나 창밖의 잠수교를 보며 추억의 테헤란로에서 유행과 첨단 문화를 소비한다. 이제 ‘광화문에서 연가’를 부르고 혜화동 거리에서 추억을 떠올리며 걷는다.  

최근에 발표된 ‘버스커 버스커’의 <여수 밤바다>로 여수는 봄이 오면 꼭 가보고 싶은 낭만적인 청춘여행지 중 하나가 되었다. 최성원의 <제주도의 푸른 밤>도 인기를 얻으면서 제주도는 도시인들에게 더 없이 좋은 힐링의 장소임을 꿈꾸게 한다. 싸이의 <강남스타일>은 유튜브의 기록적인 조회를 통해 세계 곳곳의 사람들이 강남이 어딘지는 몰라도 노래를 통해 강남을 알고 있다고 믿게 한 노래다. 미디어의 영향이 크겠지만 이미 그들의 마음에 특별한 장소로 저장된 잠재된 기억으로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한국을 선택하고 강남을 찾아오게 될 것이다. 세상 사람들이 노래로 부르던 프랑스 샹젤리제를 그리워하고 밝은 태양이 빛나는 나폴리와 소렌토를 기억하다 찾아가듯이.

◆ 주성열 세종대학교 회화과 겸임교수
-파리 1 대학 예술철학 기초박사
-성균관대 공연예술 박사 수료
-모던 라이프 아트디렉터
-단국대 서양화과 겸임교수 & 산학연구원
-연성대, 극동대 호텔관광 외래교수

 

주성열 교수  td@travel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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