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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르 아브르(Le Havre)’ 항구로 가다
주성열 교수 | 승인2018.01.09 15:28

2018년 무술년 새해가 밝았다. 다사다난했던 2017년이었다. 황교안 대통령권한대행이 정상을 대신해 통치하고, 박근혜 퇴진 촛불집회가 천만 명을 넘었다. 블랙리스트로 문화계가 격분했고 사드(THAAD)의 배치로 정치계와 국제상황도 술렁거렸다. 3월 10일 박근혜 대통령이 파면, 뇌물 혐의 등으로 구속되었고 늦었지만 세월호가 1073일 만에 물 밖으로 나왔다.
5월 9일에 재보궐 선거에서 문재인이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북한 병사가 총격 속에서 탈출에 성공하였고 포항에선 지진의 큰 피해가 있었다. 이제 역사적인 사건들은 시간의 흐름 속으로 묻혔다. 나이가 들수록 흐르는 시간을 체감하는 속도도 빨라 작년 신년인사를 나눈 때가 얼마 지나지 않은 듯 했는데 또 새해가 온 느낌이다.

인류가 태양력을 따르던 이후 신년맞이 덕담과 행사는 지구가 태양을 한 바퀴 돌때마다 이어지고 있다. 붉은 에너지와 새로운 기운을 담고 있는 태양은 인간에게는 소중한 가치를 지닌 존재가 분명하다. 태양 없이는 모든 생명체의 생존이 불가능하다. 모든 먹거리도 태양 에너지의 변형물이거나 부산물이지 않은가. 지구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는 이 에너지를 기본으로 생명을 유지한다. 태양 에너지를 근본으로 삼는 인간이 해돋이를 바라보는 감정은 내 몸과 관련된 신비의 체험이다. 유럽 사람들은 밝은 태양을 쫓아 여행을 계획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필자도 2018년 무술년 새로운 태양을 맞아 가는 해의 아쉬움과 부족함을 느끼며 실천하긴 어려워도 새로운 계획을 또 세우면서 독자 분들의 안녕과 건강을 빌어 본다.

새로운 아침이므로 특별한 가치관을 추구하던 19세기 화가 모네의 이야기로 출발한다. 프랑스 르 아브르(Le Havre) 항구에서 해돋이를 바라보던 화가 클로드 모네의 시선은 혁신적이었다. 그는 해돋이를 바라보면서 미술의 새로운 가치를 꿈꾸며 예술가로서의 임무와 역할에 대해 고민했을 것이다. 지금껏 익숙하던 방식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주시했을 것이다. 1872년 그린 모네의 작품 <해돋이, 인상>은 프랑스는 물론 세계 미술사를 뿌리 채 흔들었다. 모네 이후의 그림은 외부대상의 닮음이나 재현보다는 형식의 문제로 나아가 재현과 모방에서 벗어났으며, 그림 속 이야기보다는 추상의 개념이 싹트게 되었다. 이제 그림은 시각적 아름다움이 아닌 미술형식을 통해 정신적인 태도로 나아간다.

모네의 파격적인 그림은 1874년 4월 15일부터  5월 15일까지 한 달간 그룹전시에서 공개되었다. 얼마나 혁신적인 작품인지 모네의 그림으로 들어가 보자. 단순해 보이는 모네의 그림은 프랑스 대서양에 인접한 ‘르 아브르(Le Havre)’ 항구의 모습이다. 이른 아침 태양이 떠오르고 있으나 짙은 해무로 형상들을 구분하기는 어렵고 바다 한가운데 배를 끌고 가는 사공의 실루엣이 그나마 분명하다.
바다와 하늘의 경계도 없고 그림 속 모든 것이 모호하고 불분명하여 특별히 볼 것이 없는 싱거운 그림이다. 과학의 명료함을 추구하던 당시 사람들의 입장에선 불성실하고도 모호한 그림이 불만스럽다. 비싼 물감으로 대충 칠한 성의 없는 태도 때문에 화가는 대중으로부터 미친 사람 취급을 받았을 것이며, 새로운 세상을 여는 도전에 주류 화가들로부터도 말할 수 없는 비난과 손가락질을 감수해야만 했다.

비평가들도 시각적인 인상만으로 그림을 그렸다면서 투덜거리다 비아냥거리는 말투로 모네 그림의 제목을 가져다 ‘인상주의’라 명명했다. 미술사에서 가장 혁명적인 사건인 ‘인상주의’가 탄생한 배경에 모네와 그의 그림이 있었던 것이다. 당대만 하더라도 미술계의 주류는 진지하고 고전적인 전통회화를 주장하던 사람들이었고, 단지 소수의 화가들만이 시대를 앞선 내용으로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그러나 인상파 화가들은 대중의 무시와 위협적일만큼 혹독한 삶을 견디면서도 아랑곳 않고 타협보다는 극복을 통해 새로운 세상을 밝히고자 한 것이다.

마네, 세잔, 드가, 르누아르, 반 고흐 등의 혁신가들 중심에 모네가 있었다. 당시 3만 여명의 전업화가들이 활동하던 파리에서 새로운 작업을 하던 그들은 철저히 배제되었고 소외된 집단으로 고통을 받았다. 그러나 추후 미술사가들은 대다수의 주류 화가들을 밀어내고 인상파 화가라 불리던 10여 명의 비주류들을 현대미술의 선구자라는 이름으로 미술사에 기록하고 있다.

클로드 모네, <해돋이, 인상>, 캔버스 유화, 1872.

어떤 확신으로 그들은 대다수의 화가들이 추구하던 것으로부터 벗어나 특별한 그림을 그렸던 것일까. 이는 세상을 바라보는 가치관의 전환이자 의지의 변화로 볼 수 있다. 모네의 혁신성은 미술은 대상이나 사건을 재현하는 수단이 아니라 작품 자체의 양식을 목적으로 하는 독립적인 세계라는 생각에 있다. 인상주의는 대상의 닮음이나 재현보다는 빛의 변화를 그리려 했다. 프리즘이 발명되고 광학이론이 발달하면서 색이란 물체의 성질이 아니라 빛의 효과에 의한 것임을 밝혀낸 과학적 성과의 영향에서였다.

시간에 따라 빛의 양이나 세기가 달라지고 대상 표면의 색도 달라진다고 보았고 빛에 의한 시각적 인상을 나타내기 위해 야외로 나갔으며, 그곳에서 직접 경험한 시각적 진실을 나타내려 했다. 눈으로 받아들인 정보가 뇌로 들어가 재구성되어 나온 형식의 그림이 아닌 눈이 순수하게 체험한 날것의 정보를 그대로 화폭에 옮기려는 시도였다. 뇌의 지배를 받지 않는 순수한 시각적 정보를 직접적으로 제시하려는 의도였다. 튜브물감의 발명도 한 몫 한다. 르누아르는 ‘튜브물감이 없었다면 모네도 세잔느도 없었을 것’이라고 언급한다. 튜브물감은 영국에 거주하던 미국화가 존 랜드가 1841년 발명해 프랑스에서 1850년대부터 상용화되었다. 튜브 물감은 야외에 나가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주었고, 어두운 아뜰리에를 벗어난 그림은 더욱 더 밝아지고 태양빛의 효과를 빠르게 담을 수 있었던 것이다. 

미술사는 기존의 형식을 짓밟았던 혁명의 순간들을 기록해 놓은 것이란 말이 있다. 물론 계승과 변화라는 말도 적절하지만 새로운 미술의 탄생은 기득권의 가치를 짓밟는 일이기에 언제나 사회적인 대혼란을 야기했다. 모네 이전의 그림은 자연, 종교, 신화, 영웅, 사건 등의 대상이나 이야기를 재현하는 방식을 원칙으로 삼았으나 혁신자들은 새로운 시각으로 사물을 지각했던 것이다. 인상주의자들에게 그림의 소재는 사물보다는 빛이다. 사물을 그리지 않았기에 사물의 정확성을 논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화면에는 물감으로 빠르게 칠한 빛의 떨림만 있을 뿐이다. 고유색은 없고 단지 빛의 변화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므로 사물이 지닌 색은 절대적인 색이라기보다는 빛에서 나온 색의 반사라는 것이다.

새해를 맞이하는 사람들의 마음에도 새로운 시대에 대한 희망과 설렘이 있을 것이다. 좀 더 잘 살고 싶다는 욕망일 수 있겠지만 새로운 시대가 만들어야 할 가치관의 변화에 따르는 희망도 있을 것이다. 세상은 저절로 열리기도 하지만 혁신적인 미래는 고통스러운 변화와 혁신적인 실천을 통해 만들어 진다. 또한 혁신을 추구하는 동시에 과거의 가치를 균형 있게 수용하는 지혜로움도 필요하다.

창의적인 사람이 늘 새로운 세계를 이끄는 것은 아니지만 오늘날 급변하는 환경에 적응하고 경쟁우위를 점하려면 어느 때보다 혁신적인 사고는 필요하다. 소수의 예술가들은 독창적인 태도를 가지고 활동한다. 창의성은 독창적인 태도를 통해 가치를 부여한다. 모네는 창의적 독창적 가치를 통해 새로운 작품을 세상에 공개한 것이다. 예술은 우리의 삶이 의지의 명령에서 벗어나 모든 번뇌를 종식시키는 사태, 즉 무(無)로 들어가게 되는 상태라고 쇼펜하우어는 말한다. 예술적인 삶을 위해 촉을 세우고 새로운 변화를 감지하는 힘이 필요하다. 서서히 익어가는 열매의 충실함도 지나치면 무르기 마련이다. 나이가 더할수록 자신만의 삶을 예술가처럼 창의적으로 이끌어갈 수도 있는 지혜가 있지 않은가. 스스로를 어떻게 경영할 것인가 하는 고민에 화가 모네의 철학과 창의성을 적용해 보면 어떨까.

◆ 주성열 세종대학교 회화과 겸임교수
-파리 1 대학 예술철학 기초박사
-성균관대 공연예술 박사 수료
-모던 라이프 아트디렉터
-단국대 서양화과 겸임교수 & 산학연구원
-연성대, 극동대 호텔관광 외래교수

주성열 교수  webmaster@travel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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