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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 그들이 잠든 곳을 방문하는 사람들
이정민 기자 | 승인2018.04.09 00:07

부활의 계절은 어김없이 돌아왔다. 겨울은 봄을 토해내고 봄바람은 얼음을 녹였다. 만물은 잠자는 척하지만 부지런히 물을 길어 올려 이제 곧 형형색색의 꽃 잔치를 펼칠 것이다. Carpe diem, 지금 살고 있는 이 순간이 무엇보다도 확실하며 중요한 순간임을 일깨워주는 계절이다. 드라마틱했을 위인들의 삶. 그 중에서도 그들의 겸허한 자세를 되새기고픈 봄바람이 부는 날이다. 숭고한 봄을 맞이할 때마다 인간으로서 온전한 삶을 산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생각하게 된다. ‘Memento Mori!’, 모든 것은 언젠가 죽게 마련이다. 그리고 삶을 사랑하라. ‘Amor fati!’ 인생무상에 진지한 고민은 노력하는 삶으로 안내할 것이다.

안타깝게도 생기가 넘치는 이 시간에 두 명의 전직 대통령은 최고의 권력을 누리다 법의 심판을 기다리는 중이다. 야고보의 말씀도 장로인 그에게는 들리지 않았던 것일까? 이 봄 대한민국은 정치적 주장들이 난무하면서 남부끄러울 정도로 혼란스럽다. ‘Hoc quoque transibit!’ 이 또한 지나가리라. 봄도 오고 있고 더 멋진 나라를 위한 부활의 힘도 오고 있을 것이다.
생기가 출렁이는 잔인한 축제의 계절에 그 끝을 생각하는 이유는 지금을 더 잘 살기 위해서다. 나에게 주어진 소풍 같은 삶을 더 아름답게 만들기 위해서다. 한 사람의 무덤에는 그만의 경전이 있다. 겸손과 미덕으로 그들 앞에 서서 향기 가득한 삶이되기를 기도한다. 우리는 어떤 사람으로 기억될지 미리 담아 낼 향기를 채우기 위해 잠든 자들을 깨우러 떠나야겠다. 인간이 누리는 유일한 평등은 누구나 죽는 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품었던 진리는 영원하다.

프랑스 파리의 또 다른 안식처 공동묘지
삶은 만남의 연속이다. 만남을 통해 지혜를 얻으며, 삶의 전환점이 되기도 한다. 먼저 살다간 사람을 만나는 일은 통찰의 힘을 얻기 위함이다. 여행을 즐기는 사람들 중에 일상을 전복시키는 엄숙한 장소인 묘지를 찾는 사람이 종종 있다.

불안의 강을 건너려는 사람과 메마른 자들에겐 내일의 풍요로움과 새로운 힘을 얻을 수 있는 탁월한 장소다. 세계 최고의 무덤은 이집트 피라미드 그리고 1630년부터 22년 만에 완성된 무굴제국의 수도 아그라의 ‘타지마할’일 것이다. 1983년 세계문화유산에도 등재된 타지마할은 무굴제국의 왕 ‘샤 자한’이 사랑하던 ‘뭄타즈 마할’이 14번째 아이를 출산하다 세상을 떠나자 국가 예산의 20%를 투입하여 만든 아름다운 무덤이다. 세계적인 공원묘지는 건축물의 아름다움보다는 먼저 살다간 수많은 영웅들을 만나는 역사적인 유적지이며, 휴식의 공간이자 쉼터로서 더 각광받는다.

필자에게도 따듯한 봄날이면 집근처 ‘페르 라셰즈’ 묘원을 산책했던 추억이 떠오른다. 죽은 자를 기억하는 일이 나를 발견하기에 더없는 의미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가끔 방문했던 파리 근교의 작고 조용한 마을 ‘오베르 쉬르 와즈’에는 반 고흐(1853-1890)가 마지막 삶을 살았던 다락방뿐만 아니라 동생 테오(1857-1891)와 함께 나란히 잠든 무덤이 있다. 반 고흐가 이곳에 정착하여 3개월 동안 치열하게 그림을 그리다 자신의 삶을 스스로 정리했던 밀밭을 찾아가는 날은 언제나 가슴은 먹먹했다.

파리 몽마르트르에 가면 알렉상드르 뒤마, 스탕달, 베를리오즈, 하이네, 에밀 졸라, 러시아의 무용가였던 니진스키, 드가 등이 잠들어 있다. 뒤마가 사랑했던 여인이며 베르디의 오페라 춘희(비오렛타)의 실제 모델이던 플레시스 알폰시네의 묘도 있다. 카바레 ‘라뼁 아질’ 맞은편에 1831년 조성된 ‘셍 벵상 묘지’에는 화가 모리스 위트릴로(1883-1955)의 묘가 있다.

그는 알콜중독과 정신착란으로 고통 받다가 어머니이자 화가였던 수잔의 권유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고 모딜리아니와 함께 몽마르트의 화가로 이름을 남겼다. 불행했던 삶 속에서도 역사를 만들고 예술을 키웠던 예술가들을 만나는 곳이다. 이들의 불행했고 고통스러운 삶을 회상하는 일은 간단치 않다.

예술가들의 안식처인 파리 동쪽의 ‘페르 라셰즈(Pere Lachaise)’는 48헥타르의 거대한 규모의 장묘공원이다. 과거 요양소가 있던 자리에 묘지를 조성한 것으로 당시 요양원을 이끈 신부(Pere) 라셰즈(La chaise) 이름으로 부르게 된 것이다.

지금도 ‘더 도어’의 싱어 짐 모리슨을 기억하는 젊은이들이 음악의 성지로서 자주 찾는 곳이기도 하다. 발자크, 알퐁스 도데, 오스카 와일드, 아폴리네르, 셍 시몽, 어거스트 꽁트, 메를로-뽕티, 쇼팽, 조르주 비제, 로시니, 마리아 칼라스, 들라크루아, 다비드, 앵그르, 피사로, 쇠라, 코로, 모딜리아니, 이브 몽땅, 에디트 피아프, 시몬느 시뇨레 등 이름만 들어도 바로 알 수 있는 철학자, 예술가들이 묻힌 곳이다. 쇼팽은 폴란드에서 태어났지만 20세에 파리로 이주해 살다가 1849년 10월 30일 39세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삶의 의지를 관통해 예술을 낳은 것이다. 쇼팽의 유언에 따라 자신의 심장은 조국 폴란드 바르샤바의 성십자(Holy Cross)가 성당 기둥 밑에 안치했다.

화가 모딜리아니는 이탈리아 투스카니 출신으로 35세 나이에 요절했다. 안타깝게도 그의 부인 잔느(Jeanne Hebuterne)도 둘째를 임신한 몸으로 모딜리아니가 죽은 이틀 뒤 투신하여 그의 곁으로 떠났다. 사슴의 목처럼 가녀린 부드러운 여인의 모습이 아련하다. 오스카 와일드(1854-1900)의 묘는 늘 여성 방문자들의 붉은 립스틱 자국으로 가득 채워져 있었으나 지금은 유리벽을 설치해 묘를 보호하고 있다. 그는 동성애자로 유죄선고를 받고 2년간 투옥 생활을 했었다. 출소한 후 무일푼으로 살다가 40대에 파리로 와서 재기를 꿈꾸었지만 뇌막염으로 병고를 치르다 타계했다.

길거리 가수에서 15세에 프랑스 최고의 가수가 된 에디트 피아프 곁에는 그녀와 1년간 함께 살았던 마지막 남편 테오가 있다. 사랑했던 이브 몽땅과 그를 에디트 피아프로부터 빼앗아 갔던 시몬느 시뇨레도 함께 잠들어 있다.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에디트 피아프는 어쩌면 죽어서도 편치 않을 상황이긴 하지만 그래도 이루지 못한 사랑의 찬가를 부르고 있을 것이라 짐작된다. 파리 4대 묘지 중 파리 16구에 있는 ‘파씨 공원묘지’는 에펠탑 근처에 위치하고 있다. 르노 자동차의 창업자 르노와 음악가 드뷔시, 화가 마네, 작가 게로르규, 배우 장 루이 바로 등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파리 시내에 조성된 19개 중 하나로 많은 예술가와 철학자 등이 묻혀 있는 곳으로 유명한 파리 남쪽 몽파르나스 공동묘지는 1824년 조성되기 시작했다. 거대한 정원을 닮은 이곳은 사르트르와 시몬드 드 보봐르, 사무엘 베케트, 기이 드 모파상, 이오네스코, 마그리트 뒤라스, 셍상, 부르델, 만 레이, 세자르, 세르즈 겐즈부르그 등 150 여명의 유명인이 잠들어 있다. 스스로를 ‘저주 받은 시인’이라고 부르던 보들레르의 묘는 생모와 그토록 싫어하던 의붓아버지 오픽 장군과 함께 묻혀 영원한 휴식을 취하고 있다.

실존주의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1905-1980)와 시몬느 드 보봐르(1908-1986)를 만나서 실존적인 삶의 질문을 하고 싶다면 사색의 공간인 이곳을 찾으면 된다. 두 사상가의 공동무덤은 나중에 합장한 듯하다. 20세기 초 실존주의 철학을 이끈 사르트르는 철학자, 소설가, 극작가, 정치 비평가로 운동권 지식인이었다. 시몬드 드 보봐르는 여성운동가로 둘은 ‘계약결혼’이라는 제도를 통해 결혼 없이 평생반려자로 살면서 성적 평등을 주장하기도 한다. 둘은 결혼도 동거도 한 적 없이 단지 ‘본질적인 연인’으로 자유로운 방식의 만남을 유지했다.

아름다운 공원에서 만나는 망자들
스웨덴 스톡홀름의 스콕스키르(Skogskyr) 공원묘지는 발트해의 해풍과 햇살을 받고 있는 최고의 자연공원으로 1914년 공원묘지 건축물 대회에서 대상을 받았고 세계문화유산에도 등재되었다. ‘자연으로 돌아가자’라는 모토로 조성된 드넓은 잔디밭과 울창한 숲은 산자와 죽은 자 모두를 위한 휴식의 공간이다. 그러기에 모두는 그곳을 묘지보다는 ‘스콕스키르 공원’ 또는 ‘우드랜드’라고 부른다.

오스트리아 비엔나를 다 둘러봤다 해도 중앙 공원묘지를 가보지 않으면 후회하게 될 것이다. 1874년 조성된 중앙공원묘지에는 250만 명이 잠들어 있는데, 32A 구역 모차르트 묘지를 중심으로 그의 곁에 묻히고 싶다는 유언을 남긴 슈베르트, 베토벤과 요한슈트라우스가 주변에 묻혀 있으며, 묘지 오른쪽으로 요한슈트라우스 2세와 브람스, 브루크너 등 수많은 음악가가  묻혀 있다. 공동묘지라기보다는 하나의 잘 꾸며진 조각 공원이다.

이탈리아 베니스의 무라노, 부라노, 토르첼로 섬들은 여행객들에게 인기가 많은 곳이다. 그 중 주목해야 할 섬이 있는데 망자를 위한 가장 아름다운 섬 산 미켈레 섬이다. 베니스 사람들이 죽으면 섬 전체를 붉은 벽돌로 담을 쌓아 요새나 궁전처럼 느껴지는 이곳으로 온다. 지중해를 바라보는 아름다운 이 섬은 베니스 사람들뿐 아니라 유럽 전체 사람들이 묻히기를 원하는 곳이다. 세르게이 디아길레프, 스트라빈스키, 쇤베르크의 사위인 음악가 루이지 노노, 미국 시인 에즈라 파운드 등이 영면한 곳이다.

1866년 안토닌 비에렘이 조성한 체코의 비셰흐라드(고지대의 성) 언덕 공원묘원에는 체코의 음악가 스메타나, 차페크, 드보르자크, 알폰스 무하 등이 잠든 곳으로 유명하다. 프라하 유대인 묘지 한가운데 놓인 카프카의 무덤은 소박하고 조촐하지만 그가 죽어서도 여전히 사랑받는 사람임을 알 수 있었다. 카프카는 사후에 그의 명성이 알려지면서 이곳으로 이장되었는데 그토록 원망스러워했던 아버지와 함께 묻힌 카프카의 모습은 어딘가 안쓰럽다. 작가가 되고 싶은 아들의 꿈을 인정해주지 않는 독단적인 아버지는 <아버지께 드리는 편지>는 물론 <변신>에서도 폭압적이고 위선적으로 그려진다.

독일에도 1877년 함부르크의 올스도르프 공원묘지와 뮌헨의 발트 공원묘지 등이 정원묘원으로 사랑받고 있다. 독일 바그너와 그의 딸과 아들 지크프리트, 독일낭만파 문학의 선구자 얀파울, 피아노의 황제라 불리는 프란츠 리스트가 묻혀 있는 독일의 바이로이트 시립공원묘지, 독일 베를린 필하모니의 대 지휘자였던 빌헬름 푸르트벵글러가 묻혀 있는 하이델베르크 시립공원묘지 등도 세계 도처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오고 있다. 독일에는 또 다른 특별한 장소가 있다.

2003년에 페터 아이젠만의 설계로 2004년에 완성한 ‘홀로코스트 기념비 공원(Holocaust-Mahnmal)’이다. 2차 세계대전 당시 홀로코스트에서 희생된 유대인들을 추모하기 위한 공원으로 베를린 시 중앙에 건립되었다. 19,000㎡의 면적에 2,711개의 콘크리트비가 세워졌고 지하에는 학살당한 유대인들의 이름과 개인기록이 전시된 박물관이 있다.

러시아 상트 페테르부르크에는 알렉산드르 네프스키 정교회 수도원이 있다. 이 수도원에 러시아의 유명한 음악가와 예술가들이 영면해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러시아 음악의 아버지 글린카, 발라키레프, 무소르그스키, 보로딘, 차이코프의 스승 안톤 루빈스타인, 림스키 코르사코프, 무소르그스키, 가장 많은 사람들이 찾는 차이코프스키와 도스토예프스키의 묘지도 있다.

아르헨티나 부에노스 아이레스에는 프랑스인 프로스페르 카텔린이 설계하여 1822년에 준공된 5헥타르에 조성된 레콜레타(Recoleta) 묘지가 있다. 레콜레 수도원 옆에 위치하고 있으며 4,700여 무덤 중 가장 사랑받는 곳은 페론 대통령의 두 번째 아내이자 영부인 에바 페론(에비타)의 묘이다. 배우이자 가수였던 에바는 영부인이 된 후에도 가난한 민중의 편에서 많은 일을 했던 영원히 사랑받는 인물이다. 물론 오비디오 레바우디뿐만 아니라 역대 대통령, 정치인, 예술가들이 잠들어 있어 문화재로도 가치가 높은 곳이다.

숭고한 가치를 지닌 대한민국 위인들의 정원
한국의 신성하고 장엄한 제례 공간인 종묘, 조선 최고의 명단이던 여주의 영릉, 경주에는 통일신라 최고의 고분들과 천마총 그리고 송림, 한 왕조의 모든 왕이 잠든 구리시 동구릉 등도 자연친화적인 풍광과 자연미를 최고로 극대화한 공간이다. 세계문화유산으로 미의식이 빼어난 왕릉의 숲길은 유럽의 공원묘원 못지않은 성스러운 장소이며 산자들을 위한 사색의 공간으로 손색이 없다. 서울 흑석동과 유성에도 아름다운 국립현충원이 있다. 현충원은 봄이 되면 꽃의 향연이 펼쳐지는 아름다운 공간이지만 산책하려는 사람의 발길이 그리 많지는 않다. 근대 이후에 조성된 묘원이 한국인에게 심리적인 거리감을 주고 있다는 반증이다. 앞으로 광주의 5.18 민주묘지도 역사적인 장소라는 의미로의 추모뿐 아니라 자주 찾아가는 사색의 공원으로서 역할을 할 수 있기를 바란다.

한국의 위인들이 안장된 묘역은 안타깝게도 지구상 곳곳에 분포되어 있다. 가장 위대한 화가 이중섭은 망우리, 시인 윤동주는 중국 룡정, 화가 박수근의 묘는 포천에서 고향인 양구로 이장되었다. 김환기와 김향안 부부의 묘소는 뉴욕 근교에 있다. 2006년 타계한 백남준의 유해는 서울, 독일, 뉴욕에 나눠서 안치했다. 그의 유해 중 일부는 49재에 삼성동 봉은사 법왕루에 모셔져 있다. 유관순의 유해는 이태원에 묻혔으나 미아리로 이장하려다 유실되어 매봉산에 초혼묘를 만들었다.

뤼순 형무소에서 처형당한 안중근 의사의 묘도 유해가 발견되면 모실 가묘가 효창운동장에 있다. 안중근 의사는 순국 이틀 전 동생들과 빌헬름 신부에게 “내가 죽거든 하얼빈 공원에 묻어두었다가, 조국이 독립되거든 고국으로 옮겨다오. 나는 천국에 가서라도 조국의 독립을 위해 힘쓸 것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그의 곁에는 백범 김구가 해외에 묻혀 있던 의사 세 분의 유해를 찾아와 안장한 이봉창, 백정기, 윤봉길 의사의 묘가 있다. 신동엽 민족 저항시인의 무덤은 1969년 파주에 안장했다가 1993년 부여로 이장했다.

얼마 전 조금은 특별한 묘소가 마련되었다. 최근 ‘귀향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탄생 100주년을 맞은 통영 출신 작곡가 윤이상의 무덤을 한국 고향마을로 이전하는 결정을 내리고 일부 시민 단체의 반발에도 3월 20일 윤이상의 유해는 통영국제음악당 묘역에 안장됐다. 타지에서 살아야만 했던 세계적인 음악가는 1967년 ‘동베를린 갑첩단’ 사건으로 2년간 복역 후 풀려나 독일 등지에서 활동을 하다 1995년 사망했다. 98㎡ 면적에 1m 높이 향나무, 해송이 심어졌고 너럭바위에는 이름과 생몰연도, '더러운 곳에 처해 있어도 세상에 물들지 않고 항상 맑은 본성을 간직하는 연꽃'이라는 뜻의 ‘처염상정(處染常淨)’이라는 문구가 새겨졌다.

시간이 흘렀으나 아직도 전 대통령의 죽음을 애도하는 참배객들이 찾아가는 곳이 있다. 2009년 5월23일, 노무현 전대통령은 명예롭지 못한 방식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전직 대통령이었으니 국립현충원에 묻혀야 한다는 주장을 뒤로하고 ‘작은 비석 하나만 남겨 달라’던 고인의 뜻에 따라 승효상 건축가는 봉하마을 대통령 사저 옆에 그를 안치했다.

건축가가 고른 장소는 마을과 산 사이에 물길이 흘러가며 묘하게도 삼각형 모양의 터였다. 기념탑이나 조각도 없이 지관 스님의 글씨 ‘대통령 노무현’이란 여섯 글자만 새긴 고인돌 모양의 너럭바위가 있을 뿐이다. 철판에 새긴 노무현의 말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은 신영복 전 성공회대 교수의 글씨다. 그곳은 대한민국 국가보존묘지 1호가 되었다.

한국인의 정신을 대변하는 영웅들의 안식처를 찾아가는 길은 험난하다. 장묘공원이 산 사람이 즐겨 찾을 수 있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그곳이 추모와 사색의 공간이라는 의식이 필요하다. 동양인에게 죽음은 삶과 공존할 수 없는 것, 영원한 이별이라는 개념으로 인식되어 있기 때문에 한국의 묘지는 도시와 상당히 떨어져 있다. 존경하는 사람을 죽어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장묘공원은 강력한 철학적 사색의 공간일 수 있어 종종 죽음을 기억하면서 현재를 사랑하며 살아갈 수 있는 역할을 할 수 있다.

후손들은 세상을 떠난 자들을 깨워 쉼표를 마치고 또 다른 역사를 만들어가야 할 것이다. 참배와 사색 그리고 안식이 가능한 공원묘원이 사랑받는 공공의 장소가 되길 바라며, 진정한 위인들의 숭고한 가치를 기리는 위인들의 정원에 대한 계획이 마련되기를 필자는 소망해본다. 부활의 계절이다. 위대했던 자들과 선구자들의 삶을 반추함으로써 지혜를 얻고 그들을 깨워 삶의 의미를 다시금 확인하는 부활의 계절이기도 하다.

◆ 주성열 세종대학교 회화과 겸임교수
-파리 1 대학 예술철학 기초박사
-성균관대 공연예술 박사 수료
-모던 라이프 아트디렉터
-단국대 서양화과 겸임교수 & 산학연구원
-연성대, 극동대 호텔관광 외래교수



 

이정민 기자  ljm@travel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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