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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황두연 US트래블 대표
이정민 기자 | 승인2018.05.07 21:49

황 대표, 한국 여행업의 살아있는 이야기
교포
·외래객 대상 인바운드 전문성 발휘

한국 현대사의 흐름을 읽을 수 있는 '국제시장'이라는 영화가 있다. 
주인공의 인생을 따라가기만 하면 우리의 현대사가 한 눈에 들어온다. 
황두연 'US트래블' 대표의 삶 역시 그렇다. 
그의 인생사를 듣고 있으면 일단 재미있다. 여행업을 시작하게 된 동기부터 역경과 고난, 그리고 환희까지 어쩌면 한국의 여행업을 간접적으로 통찰 할 수 있는 기회기도 하다. 

황 대표는 이제 여행업계 어른이다. 단지 오래 머물렀다 해서 어른은 아니다.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기에 '어른'이라는 표현을 사용해도 무리가 아니다. 그의 스토리. 최소한 그의 이야기는 업계 ‘History’로 충분하다.

황 대표는 이제 여행업계 어른이다. 단지 오래 머물렀다 해서 어른은 아니다.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기에 '어른'이라는 표현을 사용해도 무리가 아니다.


1960년대 말. 대학 재학 중 해병대에 근무한 황 대표는 어느 날 손을 번쩍 든다. 전 국민의 학력이 미천했던 시절 당시 해병대에서도 이른바 '대학 물' 좀 먹어본 인재가 필요했다. 그렇게 들었던 손으로 황 대표는 영어와 그리고 미국 문화를 접하게 된다. 어쩌면 지금의 ‘US트래블’이라는 회사명은 그때부터 태생 했는지 모른다. 

황 대표는 이를 계기로 미국 해병대에 파견돼 당시 베트남의 호이안, 다낭 등지 에서 미군 생활을 경험하게 된다. 당시 그에게 미국의 문화는 충격 자체였다. 노동의 댓가로 받는 임금과 무엇보다 먹고 사는 격차가 너무 컸던 탓이다. 

민간인으로 돌아 온 황 대표는 평범한 한국의 직장인으로 청년 시절을 보낸다. 그리고 1977년 수많은 우여곡절 끝에 드디어 미국행을 결심한다. 훗날 황 대표가 밝힌 인생 첫 번째 컷이 탄생하는 순간이다. 
당시 대부분의 이민자들이 그렇듯 황 대표 역시 시간당 3달러를 받는 주유소 직원으로 미국에서의 첫 노동을 시작한다. 
당연히 부족한 액수다.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된 직업이 필요했으며 노동이 절실했다. 

US트래블은 외국인 또는 교포들 상대로 하는 인바운드 여행사로 그동안 쌓아졌던 전문성이 가장 큰 경쟁력이다.

인간에게는 누구나 결정적 순간이 있으며 결정적 인물이 항상 등장한다. 미국 ‘나이아가라’는 그에게 결정적 장소였으며 그곳으로 이끈 친구가 다가온다. 그가 처음 맞는 미국에서의 비교적 안정된 생활의 시작이다. 
자그마한 가게를 오픈하고 매일매일 몸은 고단하지만 내일의 희망을 꿈꿀 수 있는 나날이 계속된다. 

살다보면 자주 접하는 이들이 자신의 인생을 바꿔주는 계기가 심심치 않게 일어난다. 당시 조그마한 상점을 운영하던 그 곳으로 일본인 단골 여성이 찾아온다. 그녀의 남편은 버스 회사를 운영하던 남자였다. 그리고 그녀의 소개로 첫 여행객을 맞는다. 미국으로 여행 오는 한국인을 인솔해달라는 부탁이었다. 한국이든 미국이든 황 대표의 인바운드 고객 첫 만남이다. 

당시 가이드 경험은 일종의 아르바이트 수준이었지만 경험은 무시 할 수 없을 터. 
해외여행이 '로또'와 비슷한 행운의 시절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나이아가라’를 찾는 극소수의 한국인을 인솔하는 경험이 황 대표에게는 누구나 경험할 수 없는 호시절, 호경험이 된 셈이다. 

‘라이센스’의 나라답게 제대로 된 ‘라이센스’가 필요했다. 하지만 가르쳐주는 이도 교과서도 없었다. 황 대표는 미국인이 진행하는 투어에 손님으로 참가, 하나 두울 익혀가며 배운다. 그리고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정식 라이센스 자격을 갖추게 된다. 

황 대표는 "가게와 가이드 일을 동시에 하면서 피곤한 나날의 연속이었다"며 "당시 가이드 하루 일당은 50달러 수준으로 가게 일을 동시에 하면서 수입도 조금씩 늘어났다"고 회상했다. 

인터뷰 도중 많은 업계 후배들로부터 전화가 온다. 후배들에게 그는 영원한 '큰 형님'이다.

당시 대부분의 한국인 이민자들의 삶이 그러했듯 매일 매일 나아지는 경제적 환경 그리고 새로운 일을 꿈 꿀 수 있는 행복감은 황 대표에게도 존재했다. 사업 규모가 늘면서 한국 메뉴와 일본 스시 메뉴를 같이 파는 식당까지 운영한 황 대표의 운명은 이제 부터 조금씩 ‘여행인’으로 그리고 여행업자로 중심축이 넘어간다. 

1979년 대한항공의 뉴욕 노선 취항과 동시에 황 대표의 일은 온전히 여행업에 집중된다. 이제부터는 좀 더 전문적인 시각과 노하우가 쌓이는데 시간과 경험이 쌓이면서 한국인 외에 유럽, 남미 등 외래객 인바운드 전문가로 지금의 ‘US트래블’ 운영 전문성이 쌓이게 된다. 

여기서 잠시 황 대표가 운영하던 업체명을 돌아보자. 
이름을 떠올리면 당시의 추억이 되살아나기 마련이다. 버팔로 지역에서는 '영투어' 이후 ‘스타투어’라는 이름도 등장한다. 그리고 ‘아메리카투어’라는 명칭도 등장한다. ‘아메리카투어’는 현재 국내에도 업체가 존재할 만큼 흔해 보이지만 가장 어울리는 이름이다. 

‘아메리카투어’의 경우 1994년 서울 사무실도 운영될 만큼 호시절을 보낸다. 지금의 ‘US트래블’은 1999년 나온다. 타지에서의 고단했던 하루하루. 어딘지 있을 것 같은 희망을 바라보고 달려 온 황 대표는 그렇게 다시 한국인으로 정착한다. 

한국의 현대사는 대략 IMF 사태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1999년 즈음이 그 분기점이다. 황 대표의 첫 열정의 무대가 일단락되는 시점이다. 

2000년대를 맞이하며 US트래블은 외국인 또는 교포들 상대로 하는 인바운드 여행사로 그동안 쌓아졌던 전문성이 발휘된다. 

US트래블은 현재 전 세계 약 1000개의 업체들과 네트워트를 갖고 있다. 혹자는 '여행사를 위한 여행사'라 부른다. 네트워크의 강점 때문이다. 서울 본사의 경우 영어, 러시아, 불어, 독일어, 일어 등 전문 가이드를 보유하고 있으며 제주 지사, 중국, 미주, 구주, 캐나다, 대양주 등에 해외 지사와 네크워크를 구축하고 있다. 

황 대표는 "항공권, 호텔, 이동수단, 외국어 가이드, 관광 및 국제회의, 기차표(KR패스), 렌터카 등을 망라하고 있다. 우리의 경쟁력과 차별성은 가격에서도 찾아 볼 수 있는데 서울과 지방 지역을 포함하는 상시 투어 시스템, 그리고 저렴한 호텔요금은 협력관계에 있는 여러 여행사들에게 많은 수익을 보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최근에는 ‘K-셔틀 상품’을 재구성해 FIT 인바운드 수요 성장에도 기여하고 있다. 
남북 관계가 호전됨에 따라 향후 인바운드 수요는 급성장이 예상되는 가운데 40년 이상의 전문가가 바라본 상품 운영 및 향후 업계가 추구해야 할 방향에 대해 일문일답으로 들어봤다. 

-K-셔틀 상품은 무엇인가?
당초 ‘방문위’와 서울시에서 시작한 상품이다. 이후 US트래블이 전문적으로 맡아오고 있다. 동남권, 서남권으로 나눠 진행되던 것을 전국 전체를 커버하는 일정으로 꾸몄으며 중간 지점에서 빠져 나가길 원하는 고객 배려를 위해 기차 연결 편을 도입했다. 또한 기존 베네키아 수준의 호텔을 4성~4.5성급 고급호텔로 업그레이드 시켰다. 대부분의 고객은 외래객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평균 이상의 호텔을 사용해 기대 이상의 반응을 얻고 있다는 점이다. 

US 트래블은 ‘K-셔틀 상품’을 재구성해 FIT 인바운드 수요 성장에도 기여하고 있다.

- 최근 남북관계가 화해 무드로 바뀌면서 관광 분야 역시 주목을 받고 있다.
US트래블도 외국인 대상 금강산과 개성 관련 상품을 취급한 경험이 많다. 문제는 곧 있을 북미 정상회담에 따라 분위기가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이다. 이르긴 하지만 분위기가 변해감에 따라 부산 출발~서울~개성~해주~신의주로 통하는 상품을 만들 수 있는 날이 오길 기대한다. 거꾸로 러시아에서 부터 내려오는 인바운드 상품도 선보이는 날이 오길 바란다. 

-인바운드사 운영 중 애로점은?
호텔가격이다. 특히 OTA에게 공급하는 호텔가격이 문제다. 많은 수의 호텔들이 여행사에게 공급하는 가격보다 OTA에 제공하는 가격을 유리하게 준다. 무책임한 행태라 지적하고 싶다. 이웃 일본의 경우 에어전트들이 협력을 통해 이같은 불합리한 가격 공급이 애당초 이뤄지지 않도록 장치를 갖고 있다. FIT 고객이 늘고 있는 시점에서 반드시 고쳐져야 할 관행중 하나다. 

-해결 방안은 없나?
규제 사안이 아니기에 법적이 제재나 행정 제재가 없다. 상도의를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친화적 항공사를 지정해 ‘윈-윈’ 관계를 만들어 나가듯 ‘여행사 친화적 호텔’ 같은 제도 운영도 고려 중이다. 

- 반 백년 여행업과 인연을 맺고 있다. 기억에 남는 장면은?
미국 얘기를 안 할 수 없다. 처음 이민갈 때의 장면이 떠오른다. 젊기도 했지만 많은 꿈과 설레임이 있었다. 지금 돌아보면 순간순간 흥분된 시간이었다. 당시 1년 평균 40회 이상 해외 출장을 다니며 경험을 쌓았고 훈련을 했다. 지금의 US트래블을 운영하는데 당시의 경험과 눈물 그리고 노력이 지금의 US트래블을 지켜주는 힘이라는 생각이다. 

 

 

이정민 기자  ljm@travel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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