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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여행지 소환법②-‘화양연화’
이정민 기자 | 승인2020.12.27 19:01

예전 여행지 사진은 대략 두 가지로 나뉘었다.

풍경은 당연하고 멋진 풍경 속 ‘사람’이다. 조상님들의 옛 사진을 보면 바다건, 산 이건, 도심이건 어디를 가리지 않고 약속이나 한 듯 동료들의 등짝에 자신의 어깨 한 쪽을 밀어 넣고 즐거운 모습들이다.
심지어 해외여행이 자유롭지 못했던 시절 그 귀한 공항에서의 단체 사진 또한 그랬다. 사진 속 배경과 사진 속 많은 인물을 한꺼번에 담아내려면 서로의 어깨를 조금이라도 집어넣어야만 가능하지는 않았을 텐데 재미있는 사진들이다.

그렇게 여행지 속 사진은 풍경과 인물에만 집중되어 온 세월이 수 십 년, 어느 덧 여행지 사진에 새로운 강자가 등장한다. 디지털 카메라를 통한 ‘음식 사진’이다. 사실 디지털 세상에 가장 큰 혜택을 입은 것은 이른바 음식 장사를 하는 ‘외식업자’다.

사진 한 컷 한 컷이 돈이었던 필름 카메라 시절, 음식을 사진으로 찍어대는 행위는 극소수 전문가들만 하는 짓이지 평민, 서민들은 엄두조차 낼 수 없는 행위였다.

하지만 지금은 내가 먹는 음식이 비록 맛과는 상관없어도 비주얼만 좋으면 자랑질이라도 해야 직성이 풀리는 탓에 연신 찍어대는 세상이다.

심지어 내 집에서 먹는 음식도 가끔 보기 좋은 상차림이 나오면 찍어 올려야 한다. 예전 같으면 귀한 음식 앞에서 사진 찍는 행위는 엄마의 ‘등짝 스매싱’을 이끌어 내는 짓이었다.

아무튼 이제는 여행지에서 찍는 사진의 5할 이상은 아마도 음식 사진일 듯 싶다.

그만큼 여행지에서의 음식은 일상에서는 자주 접할 수 없는 경험이기에 이 흔치 않은 경험을 나는 사진이 아닌 ‘그림’으로 그려보기로 했다. 모두가 음식을 사진으로 찍을 때 나는 그림을 그리는 것이다.

인간이 먹는 음식을 그림으로 그리는 일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오랜 된 일이다.

서양미술사에서는 귀족들의 후원을 받지 못해 인물화를 쉽게 그리지 못했던 작가들이 즐겨 그린 게 음식 정물화다.
감자, 사과가 가장 많이 등장했으며 한국인이 가장 좋아한다는 반 고흐의 작품에서도 감자를 먹는 가족의 모습이 등장한다.

그만큼 음식을 정물화로 그리거나 위대한 작품 속 음식의 등장은 매우 오래된 일이며 흔한 일이었다.

아무리 먹거리 그림이라도 이왕이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식욕을 자극해야 한다.
식욕 자극을 위한 방법은 사실 매우 간단하다. 붉은색 이른바 ‘빨강색’을 사용하면 된다.

여행지 홍콩의 색은 ‘붉은색’이라고 했지만 막상 홍콩의 음식을 그리려니 대부분의 메뉴에서 붉은색을 찾아보기는 쉽지 않다. 원색보다는 그림으로도 표현이 쉽지 않은 애매모호한 색감의 메뉴들이다.

개인적으로도 가장 좋아하는 ‘딤섬’이 대표적이다.
대부분의 딤섬은 파스텔 톤이다. 속살이 다 비칠 정도의 얇은 겉옷을 입고 있는 게 딤섬이다. 그래서 파스텔 톤 일수 밖에 없다.

색감을 표현하기 어렵다고 해서 딤섬의 맛이 잊혀지는 것은 아니다.
종류만 200가지라는 딤섬이다. 딤섬이 맘에 드는 이유는 수 십 가지다. 맛이야 두말하면 잔소리고 딤섬을 담아내는 나무 용기가 개인적으로 맘에 든다. 왠지 건강에도 좋을 것 같은 나무 용기다.

딤섬을 먹는 방법은 두 가지다. 한 번에 입속에 넣고 씹는 것과 속살을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 반쯤 씹고 속살 확인 후 나머지 반을 다시 먹는 것이다. 나는 두 번째 방법을 주로 사용한다.

제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라도 불 빛 하나 없는 암흑 같은 공간에서 오로지 손가락과 팔의 감각으로만 음식을 먹어 본 경험이 있다면 아마도 맛에 대한 좋은 기억은 없을 것이다. 그만큼 음식은 혀를 통한 감각도 중요하지만 눈을 통해 보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가장 먼저 딤섬을 그리다 보니 홍콩의 대표 딤섬 맛 집 ‘팀호완 Tim Ho Wan’이 그립다.
맛보다 그 집의 분위기가 더 그립다. 며칠 전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좀 더 좋은 화질로 재개봉했다는 영화 ‘화양연화’ 속 장만옥이 가장 좋아한 메뉴 완탕면 냄새도 그립다.

완탕면을 비롯해 대부분의 면발 역시 색채로 표현하기 쉽지 않다. 세상의 맛있는 음식은 대부분 무채색이다. 모든 사람들에게 다 맛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강렬한 원색은 ‘호불호’가 갈릴 수 있다.

홍콩의 식탁을 채색하다보니 순백색 접시와 식탁보 채색 역시 쉽지 않다. 홍콩의 음식은 먹기는 좋고 맛도 좋으나 채색은 여전히 어렵다.

하지만 흰색을 채색할 때는 차가운 색상의 대표 격인 ‘청색’을 칠해 주면 된다. 사람들은 청색을 청색으로 인식하지 않는다. 청색은 시원함, 깨끗함으로 받아들인다.

홍콩 청색의 백미는 ‘야경’이다.
딤섬, 완탕면, 콘지 등 홍콩의 음식들이 대부분 잔잔한 색감이라면 홍콩의 야경은 강렬한 색채다. 그런 이유로 홍콩 야경을 그린다면 많은 색채 사용은 자제해야한다. 원색에 가까운 한 두 가지 물감만 사용해도 야경에 대한 표현은 충분하다.

‘스타의 거리’에서 바라본 홍콩섬 야경에는 저 멀리 초승달이 떠 있다.
차가운 청색의 야경에서 따스한 느낌을 주는 노랑색 ‘달’이다.

‘달’은 인간에게 언제나 따뜻한 존재였다. 그래서 달의 색깔은 대부분 노랑색이다.

차가운 물 위, 또 다른 따스함이 있다. 홍콩 ‘범선’이다.
그곳에는 인간들이 타고 있다. 홍콩의 야경에 심취해 있는 사람, 여행자, 인간이다. 이 역시 따뜻한 색상이다.

수많은 고층 빌딩과 건물들, 산과 달이 떠 있는 홍콩의 달동네 모습도 있다. 홍콩의 달동네는 우리네 달동네와는 다르단다. 가난이 아닌 ‘부’다. 부자일수록 윗동네에 산다는 게 전해들은 이야기다.
그 달동네에서 바라 본 범선의 모습이 궁금해진다. 얼마나 아름다울까?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은 어디서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냐에 따라 다르다.
범선에서 바라 본 홍콩의 야경이 아름다울 수도, 윗동네에서 바라 본 범선의 모습일 수도 있다.

‘화양연화 花樣年華’
우리에겐 영화 제목으로 익숙하지만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순간’이라는 의미다.

홍콩이건 어디 건 어느 곳도 갈 수 없던 2020년이었다.
결코 행복한 나날이었다 할 수 없다. ‘화양연화’와는 전혀 상관없는 한 해였다.
하지만 홍콩을 그림에 담다보니 우리에게 ‘화양연화’는 아직 시작도 안한 미래다.

여행자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화양연화’는 2021년이 될 수도 2022년이 될 수도 아니 어쩌면 매년 ‘화양연화’가 될 수도 있겠다.

 

 

 

 

 

이정민 기자  ljm@travel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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