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포와 기암괴석이 병풍처럼 늘어선 주왕산

주왕산은 폭포와 신비로운 기암괴석이 병풍처럼 늘어서 있어 그 아름다운 경치가 빼어나 1976년 국립공원과 지질공원으로 지정된 산이다. 지질공원이란 땅과 사람의 관계를 즐기면서 배우는 자연공원이다. 학술적으로 귀중한 지질과 지형을 비롯하여 서식하는 동식물에서 사람들의 문화와 역사까지 즐길 수 있어야 제대로 된 자연사 공부이자 여행이 된다.

지질공원 안내판 옆에는 학봉 김성일의 '주왕전고기(周王殿故基, 주왕의 옛 궁궐터에서)'라고 쓰인 한시가 있다. 그는 일본에 통신사로 파견되었다가 돌아와 일본이 침입하지 않을 것이라고 하여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파직되었다가 다시 경상도 초유사로 임명되어 피폐해진 경상도 지역의 행정을 바로 세우고 민심을 안정시키는 데 기여하였다. 그가 경상도 초유사로 주왕산에 왔다가 지었다는 오언절구의 시비이다.

피초심행궐 산초낙일저, 풀숲 헤치며 궁궐을 찾노라니 산마루 지는 해 낮게 드리웠네
계평이무급 와해반성니, 계단 무너져 층계 없어졌고 기와는 부서져 반 진흙 되었네
제루비요전 임심시조서, 규모 초라해 요전만 못하고 숲은 깊어 산새 서식지 되었네
흥망천고한 장소과계서, 흥하고 망하고 천고의 한을 품고 길게 휘파람 불며 시내 서쪽 지나네

임진왜란을 대비하지 못한 책임이 어찌 김성일에게 모두 책임을 물을 수 없겠지만 당파 싸움으로 나라의 위기조차 이용하지 않았나 하는 의구심으로 그의 삶의 궤적을 들여다 본다.

김성일은 경상북도 안동 출신으로 본관은 의성. 자는 사순, 호는 학봉. 아버지는 진이며, 어머니는 여흥 민씨이다. 이황의 문인이다. 1568년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승문원 권지 부정자가 되고, 이듬해 정자가 되었으며, 이어서 검열·대교 등을 거쳤다. 1572년 봉교가 되어 노산묘를 노릉, 단종의 능으로 봉축하고, 사육신의 관작을 회복시켜 그들의 후손을 채용할 것을 진언했으며, 임금의 덕과 당시의 잘못된 폐단에 대하여 논했다.

대전사 용마루 위로 거대한 성채처럼 하늘을 찌를 듯이 서있는 기암(旗巖)이다. 백두거인이 한반도 맨 위에 앉고 태백거인, 소백거인, 속리거인, 지리거인이 제 각각 한자리 차지하고 앉아 이윽고 호령할 제, 홀로 남으로 맥을 짚어 청송에 둥지를 튼 거인이 있으니 주왕거인이다. 일찍이 대륙을 발 아래 두려 했던 당나라 주도는 스스로 후주천왕이란 이름으로 당 황제에 맞섰으나 패배하여 이곳 주왕산에 숨어들었다. 당 황제의 명령을 받은 신라 마일성 장군이 쳐들어 오자 기암에 이엉을 얹혀 노적가리처럼 보이게 하여 형세가 곤궁하지 않음을 위장하려 했으나 이를 알아차린 마 장군이 화살을 날려 주왕을 격퇴하고, 그 바위에 대장군기를 꽂았다 해서 기암(旗巖)으로 부른다.

이듬해 전적과 형조·예조의 좌랑을 거쳐 정언이 되었고, 이어 홍문관수찬으로 지제교·경연 검토관·춘추관 기사관을 겸하였다. 1574년 부수찬을 거친 후 정언의 신분으로 변장에게 초피 덧저고리를 받은 우의정 노수신을 탄핵하였다.

이듬해 이조·병조의 좌랑을 역임하고, 사 가 독서하였다. 1577년 사은사 서장관으로 명나라에 파견되어 종계변무, 조선 건국 초기부터 선조 때까지 200여 년간 중국 명나라에 잘못 기록된 이성계의 가계를 고쳐 달라고 사신을 보내 주청하던 일을 위해 노력했으며, 돌아와 이듬해 홍문관 교리가 되고, 이어서 장령·검상·사인 등을 역임하였다.

아들을 낳게 해주는 아들 바위로 돌을 던져 바위 위에 얹으면 아들을 낳는다는 전설이 있는 바위이다. 아들 못 낳는 여인들의 한을 풀어주려나.

1580년 함경도 순무어사로 함흥·삼수·길주·종성 등을 살피고 돌아와, 변장의 직무에 충실한 혜산 첨사 김수를 당상관에 승품하고, 영건 만호 우응장과 정현룡·김광옥 등을 선전관에 기용할 것을 건의하였다. 1583년 사간이 되고, 이어서 황해도 순무어사로 다녀와 군기 관리를 소홀히 하고 창곡을 부실하게 한 황주 목사 윤인함의 파직을 건의하였다.

이듬해 나주목사로 부임하여 민원 처리에 노력하고, 오랫동안 끌어온 임 씨·나 씨 사이의 송사를 해결하는 등 선정을 베풀었다. 또한 이곳 금성산 기슭에 대곡서원을 세워 김굉필·정여창·조광조·이언적·이황 등을 제향하고, 선비들을 학문에 전념하게 하였다.

연화봉

1586년 나주 사직단의 화재에 책임을 지고 사직하고, 고향에 돌아와 '주자서절요'·'자성록'·'퇴계집' 등을 편집·간행하였다. 1588년 종부시첨정에 이어 봉상시정·경기추쇄경차관·예빈시정·사성 등을 역임하였다.

1590년 통신부사로 일본에 파견되었는데, 이듬해 돌아와 일본의 국정을 보고할 때 "왜가 반드시 침입할 것"이라는 정사 황윤길과는 달리 민심이 흉흉할 것을 우려해 왜가 군사를 일으킬 기색은 보이지 않는다고 상반된 견해를 밝혔다. 그 해 부호군에 이어 대사성이 되어 승문원 부제조를 겸했고, 홍문관 부제학을 역임하였다.

시루처럼 생겼다고 하여 시루봉이라 부른다. 주왕산 산행의 발길을 멈추게 하는 절경이다.

1592년 형조참의를 거쳐 경상우도 병마절도사로 재직하던 중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이전의 보고에 대한 책임으로 파직되었다. 한양으로 소환되던 중, 허물을 씻고 공을 세울 수 있는 기회를 줄 것을 간청하는 유성룡 등의 변호로 직산에서 경상우도 초유사로 임명되어 다시 경상도로 향하였다.

의병장 곽재우를 도와 의병활동을 고무하였고, 함양·산음·단성·삼가·거창·합천 등지를 돌며 의병을 규합하였으며, 각 고을에 소모관, 의병을 모집하기 위하여 임시로 파견하던 벼슬로 의병을 모았다. 또한 관군과 의병 사이를 조화시켜 전투력을 강화하는 데 노력하였다.

학봉교

그 해 8월 경상좌도 관찰사에 임명되었다가 곧 우도 관찰사로 다시 돌아와 의병 규합과 군량미 확보에 전념하였다. 또한 진주목사 김시민으로 하여금 의병장들과 협력하여 왜군의 침입으로부터 진주성을 보전하게 하였다. 1593년 경상우도 순찰사를 겸해 도내 각 고을에 왜군에 대한 항전을 독려하다 병으로 죽었다.

정치적으로 김성일은 동인에 가담하였고, 1590년 정여립의 모반사건에 연루되어 옥사한 최영경의 신원을 위하여 서인의 영수 정철을 규탄하였으며, 그 후 동인이 남인과 북인으로 갈릴 때 유성룡·김우옹 등과 입장을 같이 하여 남인을 이루었다.

용추폭포의 3단 폭포에는 폭호가 있다. 주왕산의 많은 폭포 중에서도 용추폭포는 백미이다.

주왕산에는 대전사가 있다.  대한불교 조계종 제10교구 본사인 은해사의 말사이다. 672년, 신라 문무왕 12년 의상이 세웠다는 설과 919년, 고려 태조 2년 눌옹이 창건했다는 설도 있다. 절이 있는 산과 절의 이름은 주왕의 설화에서 유래한다.

'주왕내기'에 따르면, 중국 당나라의 주도라는 사람이 스스로 후주천왕이라 칭하고 군사를 일으켜 당나라에 쳐들어갔다가 크게 패하고 신라로 건너와 주왕산에 숨었다. 이에 당나라가 신라에 주왕을 없애달라고 부탁하자 마일성 장군 오형제를 보내 주왕의 무리를 죽였다고 한다. 그 뒤부터 주왕이 숨었던 산을 주왕산이라 하고, 절은 주왕의 아들 대전도군의 이름을 따서 대전사라 하였다는 것이다. 절 이름은 나옹화상 혜근이 붙였다고 한다. 또한 신라의 주원왕이 수도했던 산이라서 주왕산이라고 부른다는 설도 있다.

창건 이후 자세한 연혁은 전하지 않는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주방사라고 기록되어 있으며, 임진왜란 때는 사명대사 유정이 승군을 훈련한 곳으로도 알려져 있다. 조선 중기에 불에 탄 것을 다시 중창하여 오늘에 이른다. 부속 암자로는 백련암과 주왕암이 있다.

이 중 백련암은 주왕의 딸 이름에서 유래하며, 옛날에는 이 암자에 큰 종이 걸려 있어 아침 저녁으로 은은한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고 하나 지금은 걸려 있지 않다. 주왕암은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나오는 주방사로 추정되며, 나한전과 가학루·산령각 등이 남아 있다.

주요 건물로는 보광전과 명부전·산령각·요사채 등이, 유물로는 보광전 앞 삼층석탑과 사적비·부도 등이 남아 있다. 이 중 보광전은 정면 3칸의 다포계 맞배지붕 건물로, 내부에 임진왜란 당시 이여송이 유정에게 보냈다는 친필 서신을 목판으로 음각한 것이 보관되어 있다. 보광전 앞의 석탑은 근처에 흩어져 있던 석탑재를 짜 맞춘 것이다.

절 오른쪽 밭에는 우물을 메운 자리가 남아 있는데, 이 우물에 얽힌 전설이 전한다. 본래 이 절에서는 부처에게 올리는 물을 매일 냇가까지 가서 길어오곤 하였다. 이를 귀찮게 여긴 승려들이 조선 중기에 앞뜰에 우물을 파고 그 물을 길어서 청수로 사용하였다. 그러나 곧 불이 나서 전각이 불에 타고 말았다.

대전사 관음전

뒷날 한 도사가 와서 불이 난 이유를 설명하기를, 이 절의 지세는 배가 바다에 떠서 다니는 부선형인데 우물을 판 것은 마치 배 바닥에 구멍을 낸 것과 같다고 하였다. 이 말을 듣고 다시 우물을 메웠다 한다. 이밖에 노루가 우물에 빠져 죽은 뒤 메웠다는 설도 있고, 이 물을 마신 승려들의 힘이 넘쳐 난폭해지는 바람에 인근 주민들의 원성이 많아지자 메웠다는 이야기도 있다.

대전사를 품은 주왕산은 720.6m로 한반도 산맥의 중심 뼈대를 이루는 백두대간의 등줄기인 태백산맥이 국토 동남부로 뻗어 나온 지맥에 위치한다. 수많은 암봉과 깊고 수려한 계곡이 빚어내는 절경으로 이루어진 우리나라 3대 암산의 하나이다.

주왕산 폭포는 주왕산의 학소대 바로 위에 있는 3개의 폭포로 용추폭포는 사면이 병풍바위로 둘러싸인 속에 옥같이 맑은 물이 쏟아지고, 바로 위에 선녀탕과 구룡소가 있으며, 그 1㎞ 위에는 아담하고 주위 경치가 빼어난 절구폭포가 있다. 왼편으로 500m 되는 곳에서는 웅장하고 거대한 2단의 용연폭포를 볼 수 있다.

이곳은 주왕산을 산행할 때 반드시 가봐야 할 명승이다. 주왕산은 맑고 깨끗한 물이 사철 흐르고 있을 뿐 아니라 우뚝 솟은 기암괴석과 울창한 수림으로 둘러싸여 있어 무릉도원이다. 폭포와 계곡의 아름다움은 설악산과 견주어도 뒤지지 않을 빼어난 경치이다.
 

엄금희 작가  hankookce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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