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제: 노엘 바캉스, ‘파타피지컬’한 상상 속 여행

성스러운 크리스마스를 찬양하는 흥미로운 이야기들
크리스마스는 '그리스도(Christ) 탄생 기념 미사(Mass)', 즉 예수 탄생을 축하하기 위해 약속한 기념일이다. 종교적인 축일이지만 사람들은 설렘 가득한 마음으로 순수했던 시절을 그리워하며 자신만의 축제를 즐긴다.

화려한 크리스마스 장식은 기쁨 가득한 꿈의 세계로 흠뻑 빠져들게 하며 아이들은 착한 일을 소소하게 헤아리면서 받고 싶은 선물을 떠올리며 산타클로스를 기다린다. 현실과 가상의 공간을 넘나들며 굴뚝으로 선물을 배달하러 온다는 산타클로스 이야기는 인간의 꿈과 사랑 그리고 다채로운 욕망으로 구성되어 있다.

성장하면서 이 아름다운 추억이 허구임을 알아차리지만 우리는 너그러운 미소로 하얀 거짓을 감싼다. 올겨울도 온 누리의 크리스마스 장식은 여느 해보다 밝게 빛나며 판타지라는 상상계로 사람들은 모시고 가는 중이다. 지구촌 곳곳 또한 산타클로스 관련한 흥미로운 이야기와 볼거리로 여행객들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빨간 옷을 입고 사슴이 끄는 썰매를 타고 나타나는 산타클로스 할아버지 이야기는 다양한 즐거움과 흥미로운 욕망을 충족시키려는 의도의 상상력이 구전되어 각색된 것이다. 투명인간이나 타임머신처럼 현실에서 충족될 수 없는 이야기는 시공을 초월하여 확대 재생산되었으며, 언어적 구성이 시청각 영역으로 확장되어 음악이 심장을 흔들고 화려한 장식이 강렬한 열정으로 축제를 만든다.

현실에서 지각할 수 없는, 상상만으로 즐거운 이야기는 인간의 흥미로운 삶을 엄밀하고 진지하게 반영하고 있어 그것이 다소 부조리하고 우스꽝스러워도 누구도 그 허구를 일부러 훼손하지는 않는다. 그러므로 대중의 일상을 지배하는 가공된 이미지와 이야기는 진실과 관계없이 전승된다. 이런 허구적인 이야기의 구성은 인간의 일상적인 삶에서 잠시 일탈의 시간을 안겨준다. 사이비 유사과학이나 정서적 유희에 가까운 ‘파타피지컬(pataphysical)’한 이야기가 더 현실이 된 것이다.

혹자는 ‘밸런타인데이’처럼 자본의 공모를 의심하지만, 산타클로스 할아버지 이야기는 매트릭스 혹은 시뮬라시옹의 구조와 닮아있으나 현실인 것이다. 12월 23일에도 1955년 이후 매년 선물을 배달하기 위해 핀란드를 출발한 산타는 12월 23일에 한국 상공에 도착해 약 7분간 머물렀다. 이 놀라운 소식은 산타 위치 추적 사이트 북미 항공우주방위사령부(NORAD)에서 전한 것이다.

빨간 옷을 입는 산타클로스 할아버지
산타클로스의 실존 인물은 280년 터키에서 태어난 니콜라스 성인이다.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으나 상속받은 재산을 모두 기부하고 수도사가 되어 평생 가난한 사람들을 도우며 살았다. 그가 세상을 떠난 날이 12월 6일인데, 이별의 아쉬움으로 사람들은 그를 성인으로 추대하여 ‘성 니콜라스’라 불렀고 그날을 ‘성 니콜라스의 날’로 기념하고 있다. 16세기 네덜란드 아이들은 니콜라스가 도착하는 밤이면 벽난로 주변에 나무로 된 신발을 놓아두었고 신발에는 니콜라스가 타고 다니는 당나귀가 먹을 짚을 채웠다. 그 보답으로 니콜라스는 작은 선물을 신발에다 넣어주었다고 한다.

‘세인트 닉’이란 네덜란드식 애칭이 이후에 ‘신터클라스’로 불렸다. 신터클라스를 기념하는 전통은 북유럽에서 미국으로 건너간 이주자들에 의해 퍼졌고, 영어식으로 ‘산타클로스’라고 불리기 시작했다. 크리스마스 축제일인 12월 6일 도착하여 어린아이들을 위한 선물을 놓고 간다는 네덜란드의 전설이 미국에서는 성탄 전야인 12월 24일로 바뀌었고, 나무 신발을 구하는 데 한계가 있어 양말로 대체되었다.

오늘날 크리스마스의 상징이 된 굴뚝과 선물은 소설가 워싱턴 어빙이 그의 소설 <뉴욕의 역사>에서 세인트 니콜라스를 뉴욕의 수호성인으로 탄생시킨 이후, 1841년 필라델피아에 있는 한 상점 주인이 만든 가게 홍보 아이디어였다.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산타클로스의 풍성한 수염과 뚱뚱한 모습은 1931년 음료수 광고에서 시작되었다. 빨간 옷은 음료수의 로고와 색 그리고 얼굴 가득 덮은 하얀 수염은 거품을 상징한다.

원래 니콜라스는 키가 크고 날씬하며 우아한 주교였는데 1863년에서 1886년까지 만화가 토머스 내스트(1840-1902)가 『하퍼스 위클리』에 20년간 연재한 크리스마스 만화 시리즈에서 수염을 기르고 배가 나온 모습의 구세군 종을 울리는 성인으로 변신한 것이다.

썰매를 끄는 여덟 마리의 빨간 코의 루돌프 사슴은 그냥 평범한 사슴이 아니다. 전 세계 50여 종의 사슴 중에서 산타가 살고 있다는 스칸디나비아에서 썰매를 끌 수 있는 사슴은 유일하게 순록이다. 순록은 수컷의 몸무게가 300kg까지 나가고 힘이 세서 뚱뚱한 산타와 선물을 가득 실은 썰매를 가볍게 끌 수 있다. 최고 속도는 시속 80km, 빙판길에서 이 정도면 대단히 빠른 속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왜 순록 중에서 유독 루돌프만 코가 빨갛게 빛이 날까. 이 이야기는 어린 딸을 홀로 기르고 있었던 로버트 메이라는 동화 작가가 쓴 첫 번째 동화책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데, 1939년 시카고에 있는 몽고메리 워드 백화점에서 무료로 나누어주던 작은 책자에 카피로 쓰이면서 유래했다. 외톨이가 된 딸의 슬픔을 달래고 꿈을 주기 위해 만든 매우 반짝이는 코를 가진 루돌프는 딸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이다.
 
크리스마스트리의 탄생과 한국의 구상나무
1570년 크리스마스 마켓이 처음으로 프랑스 북부 스트라스부르그 마을에서 탄생하였다. 현실 세계와 하늘을 나는 산타클로스를 이어주는 매체인 크리스마스트리와 장식의 연원은 놀랍게도 종교개혁에 앞장섰던 마르틴 루터로 알려져 있다. 어느 크리스마스이브 루터가 숲속을 산책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어둡던 숲이 등불을 켜놓은 듯 환하게 빛났다고 한다. 그것을 본 루터는 깨달음을 얻었고 이를 사람들에게 전하기 위해 전나무 하나를 집으로 가져와 솜, 리본, 촛불 등으로 장식했다. 이것이 바로 크리스마스트리의 시작이라고 한다. 트리 꼭대기에는 항상 별이 있는데 이는 동방의 별을 의미한다.

미국과 유럽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트리의 상당수가 한국의 구상나무다. 구상나무는 제주도 한라산과 덕유산, 지리산에서 발견되는데 이것이 서양으로 건너가 트리의 대명사처럼 되었다. 1898년 조선에 들어와 선교 활동을 벌였고 1902년 제주도 서귀포 성당의 주임신부로 부임한 프랑스 신부 타케(Taquet)의 역할이 컸다. 타케가 프랑스 등에 보낸 구상나무 표본을 하버드대 식물 분류학자 어니스트 윌슨이 1920년 새로운 종의 나무라며 세계식물학회에 ‘아비에스 코리아나(Abies Koreana)’라는 학명으로 발표했다. 동아시아의 식물 권위자였던 윌슨은 제주도에서 가져간 구상나무로 수십 종의 개량나무를 만들었는데 이 나무들이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이후 크리스마스트리로 인기를 끌면서 ‘코리안 퍼(Korean fir)’로 나무 시장에 알려졌다.

캐럴의 탄생. ‘고요한 밤 거룩한 밤’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어둠에 묻힌 밤/주의 부모 앉아서 감사기도 드릴 때/아기 잘도 잔다. 아기 잘도 잔다. /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영광에 들린 밤/천군 천사 나타나 기뻐 노래 불렀네./왕이 나셨도다. 왕이 나셨도다. (조셉 모어 시(1816), 프란츠 구루버의 곡(1818). 개신교식 번역)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Salzburg)는 성탄절을 특별하게 맞이하는 도시다. 감미롭고 아름다운 캐럴(carol) 중 하나인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의 고향이기 때문이다.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은 원래 6절까지 만들어진 곡인데 19세기 이후 점점 짧아져 3절 정도만 부른다. 지금은 300개 이상의 언어와 방언으로 불리는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곡으로 2011년 유네스코 무형유산 목록, 2016년에는 ‘EU Songbook’에도 등재되었다.
 
이 곡은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에서 북쪽으로 20km 떨어진 ‘오베른도르프(Oberndorf)’라는 마을의 ‘성 니콜라스(St. Nicholas) 성당’에서 탄생했다. 당시 ‘성 니클라우스’ 성당에 1817년에 부임한 26세의 젊은 요셉 모어(Joseph Mohr) 신부가 부임했다. 그는 1818년 성탄절을 앞두고 고장 난 오르간 수리를 포기하고 단순하고 쉬운 멜로디의 노래를 원했고, 기타 반주만으로도 성가대원들이 쉽게 배울 수 있는 캐럴을 즉석에서 구상했다.

모어 신부는 이미 1816년에 써놓은 ‘고요한 밤’이란 시에 맞는 멜로디를 붙여 줄 것을 당시 오르가니스트 그루버에게 제안한 것이다. 1818년 오스트리아의 교회음악가 프란츠 그루버(Franz Xaver Gruber, 1787-1863)가 요셉 모어(Joseph Mohr) 신부가 1816년 썼던 독일어 가사에 곡을 붙였다.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은 성 니콜라우스 교회에서 1818년 12월 24일 저녁 예배 도중에 세계 최초로 공개되었다. 이후 1937년 8월 15일 성 니콜라우스 교회는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의 노래를 만든 모어 신부와 그루버 두 사람을 기념하기 위해 ‘고요한 밤 성당(Stille Nacht Kapelle)’으로 개명되었다.

1899년 장마로 떠내려간 성 니콜라우스 교회의 제단이 있던 자리에 새로운 기념 예배당이 1937년 완성되었다. 이때 바크라인에 묻혀 있던 모어 신부의 유골이 제단 뒤에 이장되었다. 작은 언덕 위 팔각형으로 된 검은 지붕에 하얀색 작은 예배당이 마련된 것이다. 이제 그들의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을 기념하는 작은 예배당은 사랑하는 지구촌 여행자들 맞이하고 있다. 성당 안내소에서는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의 악보를 비롯하여 기념품을 판매한다. 2018년에는 〈고요한 밤, 거룩한 밤〉 노래 탄생 200주년 행사도 열렸다. (트레블 데일리. 2017. 11. 12일. ‘인터뷰-잘츠부르크 관광청 마케팅 이사’ 참조)
 
인공지능 시대와 관광 컨버전스
핀란드에 산타가 살고 있다는 마을인 라피 주 로바니에미 근처의 테마파크는 ‘탑월드’에서 최고의 여행지로 꼽힌다. 산타 마을 주소는 ‘Santa’s Post Office FIN-96930, Arctic Circle Finland’로 산타클로스와 순록이 살고 있다고 전한다. 이곳의 우체국에서는 어린이들이 산타클로스에게 보낸 편지에 일일이 답장을 해준다. 노르웨이에도 산타 마을이 있고, 어차피 가공된 인물이라 어디든 가능한 까닭인지 우리나라 경북 봉화군 분천에도 산타 마을이 있어 1년 내내 산타클로스와 루돌프를 만날 수 있다. 전 세계의 산타 마을이나 몽고메리의 <빨간 머리 앤>,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가 살아가고 있는 듯한 관광지들은 ‘파타포’를 배경으로 가상과 현실이 만나는 ‘관광 컨버전스(Tourism Convergence)’로 기획된 곳이다.

크리스마스이브와 빨간 옷을 입은 산타클로스 할아버지, 루돌프의 빨간 사슴코라는 파편적 이야기는 상상력을 통해 매혹적인 세계를 구성했다. ‘팩트’와 ‘픽션’이 결합한 ‘팩션’이 성스러운 종교를 떠나 실제보다 더 가치 있는 사실이 된 것이다. 디지털 문명화 과정에서도 가상의 것이 현실보다 더 현실 같은 일들로 흥미를 유발한다. 오늘날 ‘컨버전스 관광산업’의 중요한 콘텐츠 중 하나인 가상과 현실이 만나는 스토리텔링에 주목하는 이유 또한 이렇게 만들어진 상상과 허구의 이미지가 영원히 잠재적 가치를 유지한다는 점 때문이다.

파타피직스(pataphysics)는 20세기 중반 프랑스의 극작가 알프레드 자리(Alfred Jarry, 1873~1907)가 창시한 신학문으로, 과학의 전능함에 대한 반과학적 태도로 형이상학을 패러디한 고도의 지적 농담을 추구하면서 이성의 한계를 엉뚱하고 기발한 상상력으로 대신한다. 메타피직스(metaphysics)의 ‘메타포’는 가상과 현실이 분리되지만 파타피직스(pataphysics)의 ‘파타포’는 가상과 현실이 중첩된다. ‘컨버전스 관광산업’은 파타포를 기반으로 하는 가상과 현실이 결합한 형식을 배경으로 한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해리 포터>는 파타피지컬의 상상력을 배경으로 한 사례들이다. 가상현실과 증강현실을 기반으로 하는 디지털 게임이나 ‘닌텐도 Wii’ 또한 그렇다. 이제 인공지능 시대에 현대인은 파타피지컬한 인간으로 진화하고 있다. 산타클로스와 굴뚝도 파타피직스의 기발한 상상력 통해 현실에서 가능할 수도 있지 않을까. 괴짜 과학자들은 코끼리도 냉장고에 넣었으니 말이다.
 
인간은 매일매일 상상하며 살아간다. 미래의 희망이든 힘든 현실을 극복하려는 의도이든 사람마다 각각의 창이 있고 그 너머에 상상의 세계가 있다. 은유와 비유 그리고 상징들을 통한 간접적인 이야기로 삶의 고통이나 소통을 부드럽게 하고 흥겨운 삶을 추구한다. 산타클로스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폭로는 수용되지 않고 시간이 갈수록 새로운 상상력이 더해진다. 추운 겨울이 따듯해지는 건 화롯불이 아니라 상상력이 만든 이야기인 것이다. 내가 아닐 때 자유로운 나는 더 흥미로운 존재가 되는 것이 아닐까.

◆주성열 세종대학교 회화과 겸임교수
-파리 1 대학 예술철학 기초박사
-성균관대 공연예술 박사 수료
-모던 라이프 아트디렉터
-단국대 서양화과 겸임교수 & 산학연구원
-연성대, 극동대 호텔관광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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