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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틴 루터 시리즈 ②
이정민 기자 | 승인2016.09.24 16:07

마틴 루터의 종교개혁 500년을 기념하는 해가 다가오고 있다.
독일은 정부차원에서 지난 10년 동안 ‘2017 마틴 루터 종교개혁 500주년’을 위한 준비를 해왔다.

마틴 루터의 95개조 의견서는 세상을 바꾸었다. 루터는 교회를 개혁하려고 했으나 1519년 라이프치히 논쟁 이후 분열이 불가피해졌다. 이 종교개혁은 작센주에서 시작돼 전 세계에 영향을 끼쳤을 뿐 아니라 힘든 협상과 오랜 과정을 거쳐 수십 년 후에야 마무리됐다.

작센주 선제후의 보호가 없었다면 이 개혁은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다. 종교 개혁자와 그의 지원군, 반대파의 수많은 흔적을 따라 가는 것도 흥미로운 경험으로 작센주는 16세기 말 이미 ‘종교개혁의 성지’라는 타이틀을 얻게 됐다.

독일관광청 역시 오는 2017년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의 해를 맞아 세계적으로 벌어지는 축제에 대한 모든 준비를 마쳤다. 루터와 종교개혁에 관련된 모든 도시, 기념장소와 교회에서 오는 2017년까지 ‘루터 10년’을 기념하며 작센-안할트 연방주와 튀링겐 연방주도 적극적인 행보를 펼칠 예정이다.

작센-안할트 주 관광청과 튀링겐 주 관광청은 각 연방주의 대내외적인 관광 마케팅을 담당하며 유네스코 세계유산지, 건축, 종교 여행과 루터 여행과 같이 역사문화적인 주제를 집중적으로 다룰 계획이다.

또한 ‘루터 지역’이라는 타이틀로 작센-안할트 주와 퉤링겐 주는 미국과 한국을 중심으로 해외 마케팅을 펼치며 루터의 활동지를 알릴 예정이다.

본지는 독일관광청의 마틴 루터 종교 개혁 루트와 관련, 총 4회에 걸쳐 기획 시리즈를 선보이고 있는데 이번에는 두 번째 순서로 ‘종교개혁과 문화유산 / 정치와 반란’에 대해 알아본다.


▲ 1회 <루터의 유산이 생생히 숨쉬는 곳/ 본질과 변화>

▲ 2회 <종교개혁과 문화유산 / 정치와 반란>

▲ 3회 <설교와 제국의회: 루터의 여행/ 비전과 진실>

▲ 4회 <작은 도시들의 큰 영향력/ 국경을 넘어: 유럽으로의 길>


■ 루트 3: 종교개혁과 문화유산
종교개혁의 자취는 참으로 다양하다. 그리고 때로는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만나게 된다. 비텐베르크와 같은 루터 명소뿐만 아니라 아이제나흐, 에어푸르트 그리고 수많은 소도시, 즉 튀링엔 주의 여러 도시에도 종교 개혁의 자취가 새겨져 있다. 미술과 건축 분야의 걸작들이 이 루트를 더욱 풍성하게 하며 최고의 볼거리를 제공한다.
루터 도시 아이제나흐가 그때의 문화를 깊이 음미해볼 수 있는 루트로 이 여정의 출발점이 된다.

몇 년 동안 루터는 이곳에서 학교를 다녔고 이후 그는 인근의 바르트부르크로 도피하게 된다. 루터는 우연하게도 신약성서를 독일어로 번역하는 행운을 얻게 되는데 2017년, 아이제나흐와 바르트부르크에서는 ‘2017 국가 특별 전시회’의 환상적 무대가 펼쳐진다.

뫼라에서 루터의 가족이 살던 주택을 오늘날에도 경험할 수 있다. 슈말칼덴은 ‘슈말칼덴 동맹’이 체결된 도시로서 낭만적인 목조 고택들과 빌헬름부르크 성이 볼 만하다.
뮐하우젠에서는 1525년에 종교개혁가이자 농민 지도자인 토마스 뮌처가 처형됐다. 이 사실만으로도 상트 마리엔 뮌처 박물관에 가볼 가치가 있다. 그것은 튀링겐에서 두 번째로 큰 할렌 교회다. 다음 경유지 고타에서는 루터가 1515년 5월 동안 체류했음이 확인된다. 마지막 체류는 1540년이었는데 아마도 루카스 크라나흐를 만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에어푸르트는 ‘튀링엔의 로마’라고 불린다. 루터는 이곳에서 공부했고 1505년 아우구스티누스 수도원에 들어간다. 고타와 같이 바이마르는 2016년 4월 24일부터 8월 28일까지 국립 전시회 ‘에른스트 계 유럽을 좌우한 왕조’의 전시장이 되며 드디어 루터가 설교자로서 체류한 곳이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르네상스 시대의 화가 루카스 크라나흐가 그린 초상화다. 슈타트슐로스에 있는 이 그림이 오늘날까지 루터에 대한 우리의 이미지를 좌우하고 있다.

고타 박물관에는 무엇보다도 크라나흐의 ‘지옥과 구원’이 전시돼 있다. 이 작품은 그 당시의 깊은 신심을 인상적으로 보여주고 있는데 아마도 루터의 조언과 협조가 그 작품이 탄생하는 데 일조했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 루트 4: 정치와 반란
사방에서 마틴 루터를 공격했고 그는 분노했다. 주교뿐만 아니라 교회의 다른 고위 성직자들도 루터의 개혁 작업을 반대했고 선제후들도 그의 행동을 받아들일 수 없는 불복종이라고 여겼다. ‘루트 4’는 루터가 그의 전투를 밀고 나아가 마침내 관철해 낸 가장 중요한 곳 가운데 몇 군데를 포함하고 있다.

1519년 라이프치히에서 벌어진 종교 논쟁에서 루터는 가톨릭 신학자 요하네스 에크와 격렬한 토론을 벌였다. 가톨릭 교리와 개신교 교리 사이의 차이가 전보다 더욱 선명하게 드러나게 되는데 논쟁이 무승부로 끝나자 루터는 로마로부터 파문을 당하게 됐다. 훨씬 시간이 지난 1539년에야 비로소 루터는 다시 라이프치히의 토마스 교회에서 설교할 수 있었다.

비텐베르크는 95개조 반박문이 게시됐던 곳이다. 비텐바르크 이외에도 토르가우가 종교개혁의 정치적 중심지였으며 이곳에 개신교 최초의 교회가 건립됐다. 토르가우에서 멀지 않은 곳에 뮐베르크가 있고 그곳에는 마리엔슈타인 수도원이 있다. 그 안에 위치한 종교개혁 박물관은 개신교 지지 세력의 슈말칼덴 동맹이 1547년 카를 5세의 군대에 의해 와해된 사건을 다루고 있다.

1517년 위터보그에서는 요한 테첼이 면죄부를 판매했다. 오늘날 사람들은 그의 행동이 루터가 95개조를 내걸게 만든 계기가 된 것으로 여겨진다. 1519년에는 ‘위테보그 설교 논쟁’이 벌어졌다. 토마스 뮌처와 위테보그의 프란치스코 수도사들이 거기에 가담했고 멜란히톤의 도움을 받아 선제후들에게 아우그스부르크 종교회의를 구현할 방안에 관해 조언을 해줬다. 이 역사를 체험하려면 묀헨 수도원 내의 박물관, 상트 니콜라이 교회를 방문하거나 또는 위테보그와 비텐베르크 사이의 루터-테첼 도로를 탐방하길 권한다.

훗날 루터의 부인이 된 카타리나 폰 보라는 그림마의 님쉔 수녀원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으며 이곳은 오늘날 폐허가 됐지만 여전히 볼 가치가 있다. 츠비카우의 막스 페히슈타인 박물관은 2015/2016 시즌에 ‘개혁과 혁명- 새로움으로의 길’이라는 전시회를 개최한다.

그리고 드레스덴에서 이 루트는 장엄하게 끝나게 된다. 개신교 건물로서 유럽에서 가장 큰 원형 지붕을 갖고 있는 프라우엔 교회가 그곳에 있다. 그 앞에는 인상적인 모습의 루터 동상이 서 있으며 신시가지에 있는 신고딕 양식의 마틴 루터 교회도 한 번쯤 찾아가 볼만하다. 또한 유명한 녹색 둥근 천장은 꼭 봐야 하는데 이곳에는 루터의 인장 반지와 술잔이 전시돼 있다.

드레스덴은 도시의 아름다움, 박물관, 크리스트 슈톨렌뿐만 아니라 독일 및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소년 합창단 중 하나인 드레스덴 십자가 합창단이 유명하다. 700년 이전부터 크로이츠 교회가 이 합창단의 문화적 본거지가 됐으며 1739년 이곳에서의 첫 번째 개신교 예배 중 합창을 한 이래로 예배, 저녁 예배 및 콘서트는 드레스덴 문화 일정에 항상 포함되고 있다.

이정민 기자  ljm@travel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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