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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틴 루터 시리즈 Ⅳ
이정민 기자 | 승인2016.10.16 16:31

마틴 루터의 종교개혁 500년을 기념하는 해가 다가오고 있다.
독일은 정부차원에서 지난 10년 동안 ‘2017 마틴 루터 종교개혁 500주년’을 위한 준비를 해왔다.

마틴 루터의 95개조 의견서는 세상을 바꾸었다. 루터는 교회를 개혁하려고 했으나 1519년 라이프치히 논쟁 이후 분열이 불가피해졌다. 이 종교개혁은 작센주에서 시작돼 전 세계에 영향을 끼쳤을 뿐 아니라 힘든 협상과 오랜 과정을 거쳐 수십 년 후에야 마무리됐다.

작센주 선제후의 보호가 없었다면 이 개혁은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다. 종교 개혁자와 그의 지원군, 반대파의 수많은 흔적을 따라 가는 것도 흥미로운 경험으로 작센주는 16세기 말 이미 ‘종교개혁의 성지’라는 타이틀을 얻게 됐다.

독일관광청 역시 오는 2017년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의 해를 맞아 세계적으로 벌어지는 축제에 대한 모든 준비를 마쳤다. 루터와 종교개혁에 관련된 모든 도시, 기념장소와 교회에서 오는 2017년까지 ‘루터 10년’을 기념하며 작센-안할트 연방주와 튀링겐 연방주도 적극적인 행보를 펼칠 예정이다.

작센-안할트 주 관광청과 튀링겐 주 관광청은 각 연방주의 대내외적인 관광 마케팅을 담당하며 유네스코 세계유산지, 건축, 종교 여행과 루터 여행과 같이 역사문화적인 주제를 집중적으로 다룰 계획이다.

또한 ‘루터 지역’이라는 타이틀로 작센-안할트 주와 퉤링겐 주는 미국과 한국을 중심으로 해외 마케팅을 펼치며 루터의 활동지를 알릴 예정이다.

본지는 독일관광청의 마틴 루터 종교 개혁 루트와 관련, 총 4회에 걸쳐 기획 시리즈를 선보이고 있는데 이번에는 마지막 순서로 ‘작은 도시들의 큰 영향력/ 국경을 넘어: 유럽으로의 길’에 대해 알아본다.

▲ 1회 <루터의 유산이 생생히 숨쉬는 곳/ 본질과 변화>

▲ 2회 <종교개혁과 문화유산 / 정치와 반란>

▲ 3회 <설교와 제국의회: 루터의 여행/ 비전과 진실>

▲ 4회 <작은 도시들의 큰 영향력/ 국경을 넘어: 유럽으로의 길>


■ 루트 7- 작은 도시들의 큰 영향력
루트 7의 프랑크푸르트와 라이프치히 역은 성 로마 제국의 가장 유명한 도시에 속한다. 루터는 번번히 작은 도시를 비롯해 마을까지 찾아다녔다. 자신의 생각을 글로 온전히 담아내려 했다. ‘필수 코스’ 외에 이 루트에는 중교개혁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여러 가지 ‘숨겨진 보물’이 있다.

독일 프랑크푸르트

다시 프랑크푸르트로 돌아와 박물관 밀집 지역인 무제움스우퍼에서 매력을 발산하는 이 도시로부터 특별한 루트가 시작한다.

다시마부르크에서 스위스 종교개혁자 울리히 츠빙글리가 마틴 루터와 만났고 루트는 여기에서 바트 헤어스펠트로 향한다. 이곳 대성당은 오늘날 세계 최대 규모의 로마네스크 교회 유적으로 알려져 있다. 바르트부르크는 아이제나흐 인근에 있다. 아이제나흐의 바르트부르크에서 루터는 11주만에 신약성서를 독일어로 번역했으며 수리 후 재개한 루터 하우스에서 열리는 새 상설 전시회 ‘루터와 성서’에서 루터의 생각과 활동을 엿볼 수 있다.

츠바카우는 경류지로서 루터 루트의 한 경유지로서작센 주에 있으며 도시의 원형 도로를 걷다 보면 종교개혁의 성지들과 만나게 된다.
또한, 차이츠에서도 루터는 1542년, 1544년, 1545년에 중요한 설교를 했다. 그곳의 볼거리는 수도원 성당과 루터 도서관, 주교좌 성당, 그리고 미하엘 교회다. 미하엘 교회에서는 루터의 논제가 적힌 원본을 볼 수 있다. 후에 루터의 부인이 된 카타리나 폰 보라는 1523년, 한 수도원에서 도주했는데 그림마 근처에 있었으며 보라는 그곳에서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보냈다.

라이프치히 루터는 1519년 플라이센 성에서 벌어진 설전(라이프치히 논쟁)에 참여했다. 루터가 태어나고 1년 후 그 일가는 만스펠트로 이주했다. 루터의 본가는 현재 박물관이며 성 게오르그 교회에는 마틴 루터의 유일하게 실물 크기의 그림이 있다. 토르가우는 종교개혁의 정치적 중심지며 카타리나 루터가 사망한 곳이다. 비텐베르크는 아마도 모든 루터 관련 도시 중에서 가장 루터다운 도시이자 이 루트의 마지막 하이라이트다.

조금은 다른 형식의 루터 유적인 루터 켈러는 츠비카우에 있다. 이곳은 중앙역 가까이의 루터 교회 바로 밑에 있다. 선술집, 밴드 연습실, 탁구장, 자전거 및 목공예 공방, 라이브 무대, 설교실 등 이곳에서는 다른 곳에서 할 수 없는 많은 것들이 가능하다. 그리고 이곳에서는 1년에 5번 블루스 음악 미사가 열리는데 마틴 루터뿐만 아니라 성경, 라이브 음악, 빵도 이 행사의 일부다.

■ 루트 8-국경을 넘어: 유럽으로의 길
종교개혁은 하룻밤 사이에 일어난 것이 아니다. 이미 루터 이전부터 종교개혁의 조짐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유럽에서 피어나고 있던 휴머니즘이 밑거름이돼 새롭고 때로는 급진적인 사상들이 싹트고 있었다. 국경 너머 프랑스나 스위스를 살펴보면 더욱 잘 알 수 있다. 스트라스부르크, 취리히 같은 도시들은 당시 서적 출판의 중심지로서 마틴 루터의 생각을 확산시키는 데 공헌했다.

프랑크프루트, 독일 중심부에 위치하기 때문에 모든 곳으로 빠르고 쉽게 이동할 수 있어 이 루트를 탐색하는 데에도 최적의 출발지다.

행선지는 우선 보름스, 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중의 하나로 니벨룽겐 전설과 세계 최대의 종교개혁 기념물로 유명하다. 약간 남쪽 하이델베르크에서 루터는 95개조를 발표한 후 비텐베르크 밖에서 첫 강론을 펼쳤다.

1518년 4월 26일 그는 하이델베르크 논쟁을 주도했고 자신의 주장을 다시금 주장했다. 이곳에서 멀지 않은 스트라스부르크에서 이 무렵 마틴 부처가 활동했다. 그는 알자스의 종교개혁자로 여러 개신교 분파와 갈래 사이에서 중개자 역할을 했다. 이미 1521년부터 스트라스부르 대성당에서는 개신교 사제인 마테우스 첼이 강론을 하기도 했다.

바젤은 그 직전 스위스 연합에 가입했는데 그곳에는 위대한 인문주의자 에라스무스가 살았고 그는 1514년부터 교육 활동을 했다. 한편 취리히에서는 1519년 울리히 츠빙글리가 취리히의 개신교 교회, 즉 그로스뮌스터의 설교자 겸 목사가 됐다. 다시 독일로 돌아와 콘츠탄츠로 간다.

독일 보덴제

보덴제 지역은 아름다움과 역사로 탄성을 자아낸다. 그 점은 아우스부르크에도 해당하는 데 루터는 이곳의 카르멜리터 수도원에 잠시 거주했으며 이 수도원은 종교개혁의 시발점이었다. 바이에른 주에서 뮌헨은 세속적 생명력이 넘실대는 대도시라서 종교개혁의 분위기가 많지는 않지만 루터의 사상을 따르는 사람들도 이곳에 와보면 모두 감탄하게 된다.

콘스탄츠의 후스 박물관은 얀 후스의 생애와 시대를 기록으로 보존한다. 그는 양심의 자유를 대표하는 철학자로서 오늘날까지 크게 존경받고 있다. 1417년 공의회가 열리자 후스는 자신의 개혁적 종교관을 설명하기 위해 콘스탄츠에 왔다.

한 가지 오점은 그는 이단이라는 죄명으로 화형에 처해졌다. 성직자들은 조금도 꺼리지 않고 새로운 교황을 선출했다. 1417년의 교황 선출은 알프스 이북에서 단 한번 실행됐다.

공식 홈페이지: www.germany.travel/luther

자료 및 사진 출처: 독일관관청

이정민 기자  ljm@travel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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