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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연월이 꿈이런가 하노라
이정민 기자 | 승인2017.01.15 21:06

오백 년 도읍지를 필마로 돌아드니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 데 없다

어즈버, 태평연월이 꿈이런가 하노라

고려말 충신 야은 길재의 고시다. 머리가 한창 잘 돌아가던 고등학생 시절 고전문학 시간에 외웠던 이 시조가 아직도 머릿속에 남아있는 것을 보니 역시 암기는 어릴 때 해야한다.

살다보면 시조 한편, 영문 명언 몇 가락 쯤 외워두는 것은 반드시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특히 시조는 다소 고리타분해 보일 수 도 있지만 시조에 담긴 의미와 해석은 오늘을 살아가는 이때도 인용하기 좋은 조상의 선물이다.

10여년 만에 오백년 도읍지는 아니지만 강원도 정선을 찾았다. 필마는 자동차로 바뀌었고 산천은 시조 그대로 ‘의구(依舊 예와 다름 없음)’했지만 인걸(人傑 뛰어난 인재)은 간데 없었다. 아니 온통 ‘장사꾼들’이었다.

확실히 지금 한국관광은 태평연월(太平烟月)이다. 10여년전 정선의 강원랜드에서는 외국인 관광객을 찾아볼 수 없었다. 하지만 오늘의 그곳에서는 수시로 눈에 보이는 게 외래객이다.

중국, 동남아는 물론이고 겨울 스포츠 선진국 방문객도 흔하게 보였다. 스키장의 시설은 매우 깨끗하고 훌륭했으며 시스템 역시 꽤나 완벽하다. 그런데 문제는 사람이다. 야은 길재의 표현처럼 인걸은 간 데 없었다. 잘 교육된 관련 종사자들의 입에서는 행여 바로 옆 가게에서 구입한 물건을 갖고 들어갈라치면 “어서오세요”라는 인사대신 외부음식 반입 금지 호통이 먼저 들려왔다.

고장난 시설물로 인해 방문객이 극심한 불편을 겪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수리중” 이라는 말만 되풀이한다. 현장을 가보니 ‘수리중’이 아닌 ‘수리전’인 듯 기술자는 보이지 않는다.

국내 유일의 자국민 출입이 가능한 카지노이기에 주말 게임을 즐기려는 이들로 입구는 가득하다. 호텔 로비 의자에는 카지노로 폐인 직전에 놓인 이들이 심심치 않게 보인다. 곳곳에서는 지인에게 ‘급전’을 요구하는 전화 목소리도 들린다. 그들의 말로는 지금 있는 곳은 카지노가 아닌 ‘병원’이나 ‘사업장’이었다. 온통 거짓말만 들린다.

5성급 호텔답게 로비에서 판매하는 카페라떼 한잔은 8000원. 중식당에서 판매하는 짜장면은 2만원. 5성급답다. 그런데 말이다. 이것들을 제외하곤 서울 시내 대형마트 보다 못한 주차 시스템, 시설물, 여유있는 서비스는 보이질 않는다.

카지노 이용객들의 장기 주차로 주차 성공까지는 장장 30여분 이상이 필요하며 이를 알고 있는 로비 앞 호텔 종사자들은 고가의 ‘발렛파킹’을 적극 추천한다.

5성급 호텔에서의 또 다른 재미는 로비(LOBBY)투어다. 하지만 로비를 서성이다보면 누군가 다가온다. 행색이 그리 깔끔해 보이지는 않는다. 다가와 속삭인다. “카지노에서 따는 방법 도와 드릴까요?”

평창올림픽이 코앞이다. 평창이 지근거리다. 이곳 역시 올림픽 관계지다. 지금은 분명 ‘관광 태평연월’이다. 하지만 지금처럼 하다가는 야은 길재의 표현이 현실이 될까 우려스럽다.

“어즈버, 태평연월이 꿈이런가 하노라”

 

이정민 기자  ljm@travel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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