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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여행④
엄금희 기자 | 승인2016.12.10 19:57

힐링 영주 여행 부석사의 사랑

영주가 가장 아름다운 계절이 가을이다. 천상의 화원이라고 불리는 영주는 부석사와 은행나무 숲길이 있어 가을 여행지다. 부석사는 백두대간의 중심에 있는 데다, 불교 화엄사상의 발상지다.

영주 부석사 일주문의 현판 '태백산 부석사'의 비밀을 알려주는 안내문이다. 부석사는 해발 822m의 봉황산 중턱에 자리 잡은 사찰이다. 안내문을 보면 '고치재가 태백산의 경계로 종말봉'이라고 적혀 있다.

영주는 조선 통치철학 유교의 본향으로 불려지는 고장이다. 천혜의 자연과 정신사상이 융합된 고장으로 그 자부심도 대단하다. 영주는 대한민국의 최초의 힐링특구이다. 힐링은 몸과 마음이 다 같이 행복해야 한다.

영주가 힐링특구인 이유는 우선 부석사와 소백산, 국립 산림 치유원이 있어 치유와 힐링을 할 수 있다. 그리고 우리나라 대표 정신인 선비정신으로 물질문명으로 찌들어 있는 인성 회복의 중심지이기 때문이다.

영주 부석사 일주문이다. '태백산 부석사'란 글씨는 지난 1994년에 작고한 효남 박병규 서예대가의 작품이다.
영주 부석사 천왕문이다. 이 현판의 글씨도 효남 박병규 서예대가의 작품이다.

천상의 화원인 부석사를 둘러보며 용혜원 시인의 '가을이 남기고 간 이야기'라는 시에서 "길가에 그리움을 따라 피어난 코스모스는 한송이 한송이 모두 다 그대의 얼굴입니다"라고 한 시구가 생각난다.

부석사 모두가 그리움의 얼굴이다. 은행나무 숲길에서 가을의 그리움을 힐링한다. 서양인이 가장 좋아하는 사찰이 불국사이고,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사랑하는 사찰이 부석사라는 이야기가 있다.

영주 부석사 범종루와 삼층석탑은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30호다.
영주 부석사 범종루에 '봉황산 부석사'란 현판이 보인다. 이곳 범종루에는 목어와 법고, 운판이 있다. 범종은 범종각에 있다.

부석사의 일주문까지 은행나무 가로수 길이 아름답다. 그리 길지 않은 은행나무 길이지만 부석사의 매력을 알리기엔 충분하다. 부석사 일주문에는 '태백산 부석사'라는 현판이 걸려있다. 그러나 부석사가 있는 산은 봉황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태백산이라는 쓰는 것은 고치재가 태백산의 종말 봉이라고 한다.

안내문의 내용을 읽으면 그 의문이 사라진다. 작은 것보다 큰 것을 좋아하는 심리가 현판에도 깔려 있다.

부석사는 오르막길에 축대를 쌓아 필요한 법당들을 앉혔다. 그래서 부석사는 천왕문에서부터 아홉 단의 석축을 올라야 무량수전에 이른다. 무량수전에 이른다는 것은 곧 극락으로 가는 것이다. 극락에 이르는 길이 결코 쉽지 않듯이 무량수전에 이르는 안양문은 좁고 가파르다.

가파른 계단과 문을 통과한 뒤, 숨을 고르며 마주한 무량수전에 빛바랜 편액이 먼저 반긴다. 부석사 무량수전 현판은 고려 공민왕의 글씨로 우리나라 사찰 편액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으로 추정된다.

영주 부석사 범종이 있는 범종각
영주 부석사 안양루 앞에 걸린 '부석사'현판은 이승만 전 대통령의 글씨다.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은 국보 제18호다. 정면 5칸, 측면 3칸으로 고려시대 팔작지붕 주심포계 건물이다.

무량수전은 무한한 수명과 끝없는 지혜를 지녔다 해서 '무량수불'이라고도 한다. '무량수'부처를 모신 곳이니, 무량수전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것이다.

이제 극락에 왔으니 부처를 먼저 본다. 무량수전의 부처는 아미타여래이다. 신발을 신고 다시 내려와 안양문 앞에서 석등의 공간으로 무량수전을 편액을 본다. 참 잘 쓴 글씨다. 공민왕의 글씨는 묵직하며 힘이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량수전을 보고 나면 다 내려간다. 그러나 부석사에 와서 사랑을 모르고 가면 안될 일이다. 의상대사와 선묘 낭자의 사랑 이야기가 있는 선묘각과 조사당을 향해 발걸음을 옮긴다.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 현판은 고려 공민왕의 글씨로 우리나라 사찰 편액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으로 추정된다.
영주 부석사 안양루와 석등이다. 석등은 국보 제17호이다. 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진 가장 아름다운 석등이다.

무량수전 뒤에 수줍은 듯 숨어 있는 이곳은 한 칸짜리 조그마한 전각이다. 바로 선묘각이다. 선묘는 의상대사를 사랑했던 여인의 이름이다. 선묘 낭자의 넋을 기려 세워진 곳이 선묘각이다. 1천300여 년 전 의상대사와 선묘 낭자가 나눈 사랑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영주 부석사 응전전과 자인당 가는 길

의상대사가 당나라 유학시절 머물렀던 집이 선묘 낭자의 집이었다. 의상대사를 사랑하게 된 선묘 낭자는 청혼을 하지만 불심의 길을 택한 의상대사는 받아들일 수 없다. 처음부터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하게 된 선묘 낭자다.

선묘 낭자는 의상대사의 공부와 불사에 도움이 될 것을 다짐하며 사랑하는 사람을 따라 이곳까지 오게 된다. 그러나 사람의 모습이 아닌 용의 모습으로 오게 된다.

선묘 낭자의 첫 번째 모습은 해룡이다. 바다의 용으로 변한 선묘 낭자는 의상대사가 귀국하는 뱃길을 호위하여 의상대사의 무사귀환을 돕는다.
 

영주 부석사 안양루 석등 가을 오후 풍경

선묘 낭자의 두 번째 모습은 커다란 바위였다. 의상대사가 지금의 자리에 부석사를 창건하려고 할 때 이 곳은 이미 500여 명의 도적들로 가득 차 있었다. 선묘 낭자는 커다란 바위로 변해 도적들을 머리 위에서 위협함으로써 도적들을 몰아냈고 의상대사는 부석사를 창건할 수 있었다.

돌이 떠 있다는 의미의 '부석(浮石)'은 이로 인해 생긴 이름이다. 선묘 낭자가 변한 커다란 바위는 무량수전 뒤 삼성각 가는 길에 부석이라는 이름의 바위로 있다.

선묘각에서 동쪽으로 조금 더 오르면 선묘 낭자가 사랑했던 의상대사가 있다. 의상대사가 있는 조사당은 화려하지도 않고 작지만 단정한 사당이다. 조사당은 의상대사가 처음 이곳에 와서 수도하던 자리이다. 조사당에는 의상대사의 지팡이로 알려진 선비화가 자라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다녀가며 선비화를 만져 이를 보호하기 위해 보호막을 해 놓았다.
 
의상대사와 선묘 낭자 이야기는 삼국유사에 나오는 창건설화이다. 영원한 사랑이 머문 부석사이다. 선묘 낭자는 지금도 무량수전에 석룡으로 남아 부석사와 의상대사를 지키는 수호신으로 영원한 사랑을 지키고 있다.
 
영화 어바웃 타임에 나온 "우리는 인생의 하루하루를 함께 시간여행을 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이 멋진 여행을 즐기는 것 뿐이다"란 대사가 떠오른다.

한 사람에 반한 영원한 사랑을 좋아한다. 사랑의 전설을 간직한 부석사는 찬란했던 신라 불교를 상징한다. 화엄종찰 부석사의 대웅전인 무량수전과 선묘각 그리고 조사당에서 신라 문무왕 16년, 676년 과거로의 시간여행에서 영원한 사랑을 만난다.
 
Tip
경상북도 영주시 봉황산 부석사 찾아가는 길 주소: 경상북도 영주시 부석면 부석사로 345
전화: 054-633-3464

엄금희 기자  ekh@travel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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