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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바다 사막으로 놀러 가는 사람들
온라인뉴스팀 | 승인2017.09.09 20:16

노는 일은 휴식이든 놀이든 즐겁지만 휴식과 놀이는 물리적으로는 다르다. 다수의 집단에서 홀로 남아 재충전하는 것이 휴식이라면 놀이는 개인적기보다는 집단 속으로 들어가 자발적으로 즐기고 웃고 떠드는 과정에서 잠재적 능력이 발산되는 것이다.

독일 인문철학자 쉴러(Friedrich von Schiller)는 인간이 가장 아름다울 때는 놀이(spiel, play)할 때라고 했다. 그는 놀이를 예술의 본질로 삼았다. 동물적인 본성과 신적인 이성을 공유하고 있는 인간이 감미로운 감정에 빠져드는 시점은 놀이에 몰입하고 있을 때며 놀이를 통해 인간은 세상만사로부터 비로소 벗어나 진정 자유로운 영혼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파스칼은 “인간의 모든 불행은 단 한 가지, 고요한 방에 들어앉아 휴식할 줄 모른다는 데서 비롯한다”고 휴식을 강조한다.

올해도 흥에 겨운 사람들이 극한의 상황에서 익살을 떨고 놀기 위해 사막 한가운데로 모여 들었다. 미국 서부 네바다주(州) 북부 블랙록 사막에서 8월 27일부터 9월 4일까지(매년 8월 마지막 주 월요일부터 9월 첫째 월요일) 열리는 ‘버닝맨’ 축제에 참가한 것이다.
자발적인 참여와 익실을 떨고 맘껏 자신의 끼를 발산하고 사막이라는 혹독한 상황을 즐기는 것이 ‘버너’들의 참가 조건이다. 창의성과 인내 그리고 자유를 만끽할 자세만 있다면 사막은 참여자인 버너들에겐 최적의 축제 장소가 되는 것이다. 7만 여명이 모여 일시적으로 구성된 공동체는 반경 8km가 넘는 거대한 사막에 도시를 만들고 화장실도 샤워실도 부족하고 편의점도 마켓도 없는 공간에서 서바이벌 놀이(축제)를 벌인다.

버닝맨 축제는 해마다 정해진 주제를 정하고 버닝맨의 상징물인 더 맨(The Man)과 주제를 위해 만들어지는 템플(Temple), 그리고 땅이 쩍쩍 갈라진 플라야(playa: 사막의  오목한 저지대)에 설치하는 소규모 작품, 사운드 캠프, 테마 캠프, 아트 카, 퍼포먼스 등 흥미로운 놀거리로 가득 채워진다. 전 세계의 창의력 넘치는 예술가, 열정적인 음악가와 엔지니어들이 그야말로 자신만의 자유로운 창작 활동을 공유하기 위해 자비를 들여 모여든다. 축제가 예술은 아니지만 그 곳이 예술이 사는 거처요 모태가 되기에 손색이 없다.

사막 축제 참가자 버너들은 관람자이면서 동시에 창작자가 된다. 축제 현장에는 상업성이 철저히 배제되므로 돈을 주고 살 것이 거의 없다. 비바람이 몰아치고 눈앞이 안보일 정도의 비도 내리고 모래바람도 불어오는 사막의 예측불허의 날씨도 그들에겐 전혀 장애가 되지 않는다. 그래서 모래바람을 막아주는 마스크와 보안경은 챙겨야 할 중요한 물품이다. 생존에는 돈이 아니라 서로 의지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공동체 의식을 몸으로 체험하게 된다. 이곳에서 만난 세계 각지의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공동체 구성원이돼 정보와 영감을 지속적으로 주고받는다.

버닝맨 축제를 즐기기 위해서는 10계명을 지켜야 한다. 버닝맨은 ‘자율’과 ‘공유’로 운영되므로 누구든 능동적으로 참여하고 버너의 일원이 돼야 하며 개인의 표현을 자유롭게 허락하고 창의성으로 살아남아야 한다. 물건과 먹거리는 공유와 교환을 원칙으로 하고 모든 보상은 포옹만으로도 족하다.

참가자들은 숙식을 포함한 모든 것을 스스로 조달하고 텐트로 캠핑을 하며 서로 숙소를 개방해 공동체를 형성한다. SNS 등 모든 기계 문명을 버려야 하며 인간의 생존을 위해 서로가 공유하고 협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버너들은 협력과 공동작업으로 구축한 예술 창작물을 체험하고 열정과 에너지를 발산하면 되는 것이다.
참가자들은 각자의 책임의식으로 즐기고 떠나는 날 쓰레기는 하나도 남김없이 가져가야 하는데 만약 참가자가 쓰레기를 소홀하게 처리했다면 패널티가 주어져 재방문이 어려워질 수 있다. 집행부가 수주일 동안 남아 정리를 마치면 동화 속 이야기처럼 사막만 남고 축제의 흔적은 사라진다.

에고를 버리고 모든 사람이 편견 없이 서로를 받아들이는 사회를 만들자는 의미의 버닝맨 축제는 1986년 래리 하비(Larry Harvey)와 제리 제임스(Jerry James)가 하짓날 메리 그라우버거가 처음 모닥불 행사를 벌인 샌프란시스코의 베이커(Baker)해변에서 그를 따라 나무로 만든 인물상 조각을 불태운 것에서 시작됐다. 처음에는 하비와 제임스는 키가 2.4미터에 달하는 나무 인물상을 만들어 불태웠고 1987년에는 인물상의 크기가 더 커져 6.1미터, 1989년에는 12미터에 이르렀다.
이 대형 나무인형은 훗날 버닝맨 페스티벌의 상징물이 됐다. 1990년에 4년 만에 8백 명 이상이 참여하는 떠들썩한 축제로 규모가 커짐에 따라 화재를 우려한 경찰이 조형물 태우기 행사를 금지하기도 했다. 이에 해변에서 열리던 축제는 1990년부터 북쪽으로 170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블랙 록 사막(Black Rock Desert)으로 이동했다. 가상의 도시 ‘블랙 록 시티(Black Rock City, BRC)’가 탄생한 것이다.

새롭게 축제를 기획하기 위해 케빈 에번스(Kevin Evans)가 동참했고 그는 이 행사가 일시적이나마 예술가들이 자유롭게 자신들을 펼쳐 보이는 현장이 되기를 바랐다. 래리 하비는 훗날 이러한 행위가 본질적인 자기표현이었다고 진술했다. 지금은 불태우는 작품이 2억 원이 넘는 것도 있다.
왜 이런 소모적인 축제를 벌이는 것일까? 인간에게는 놀이 충동이 있는데 요한 호이징가는 이를 <호모 루덴스> 즉, ‘놀이하는 인간’으로 명명했고 로제 카이와는 저서 <놀이와 인간>에서 좀 더 구체적인 주장을 한다. 인간이 놀이를 하는 것은 인간다운 삶을 위한 열정의 또 다른 방식이라고.
여행을 가는 일도 게임을 즐기는 일도 예술도 놀이라는 문화에서 출발한다. 인류 초기에 놀이는 제의적인 성격을 가지기는 하지만 시간이 흘러 놀이는 인간의 억눌린 본성을 일시적으로 해소하는 사적 공간이 된다. 놀이의 부족함은 현대인들의 공동체의 삶에 균열을 일으키기도 한다. 공동체 의식은 사라지고 개인적인 삶으로 무장된 독기는 이웃을 공격하고 무시하고 모른 척한다.

축제는 보편적 질서에 지배된 나를 원초적인 감성을 지닌 자유로운 상태로 만드는 현장이다. 일상의 테두리를 벗어나 시공간에서 환상의 옷깃을 만지면서 또 다른 일상을 준비하는 제의다. 개인에게는 하나의 별세계, 즉 자신을 초월하는 힘에 의해 스스로 지탱되며 자신이 변모됨을 느끼는 세계에서 강렬한 생명의 절정을 경험한다.
사회를 벗어나 참여하는 이들의 생명에너지가 모아지면서 무기력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해방감도 얻을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축제는 공동체 의식의 거처로 생명의 문화적 발현이라 할 수 있다. 융은 한 인간 안에 있는 또 다른 나는 억압하면 억압할수록 더 강한 힘을 발휘하는 존재라 한다. 낮 동안 쓰고 있던 가면(Persona)을 벗고 우리 안에 존재하는 보다 동물적이고 본능적인 그래서 더욱더 역동적이지만 숨겨진 자아에게 시공간을 열어주는 것이 진정한 축제의 의미다. 진지하게 삶을 반영하는 유희는 시와 음악, 춤이 미분화 되지 않은 단계의 모습이다.

'버닝맨' 축제는 CEO 에릭 슈미츠, 아마존의 제프 베이조스, 테슬라의 엘런 머스크, 페이스북의 마크 저커버그 등, IT 관계자들, 대체 에너지업계, 스타트업 종사자, 연예인을 비롯한 전 세계 7만 명이 모여 드는 대형 행사로 커졌다. 1999년 행사에는 구글 창업자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이 직원들과 함께 참여해 주목을 받았다.
버닝맨 정신은 개방과 공유, 창조를 토대로 한 구글의 기업문화에도 나타난다. 구글이 특정 기념일이나 사회문화적 이슈 등을 알리기 위한 구글 ‘두들(Doodle)’도 이 축제를 참가하면서 구글이 부재중임을 알리기 위해 시작됐다. 실리콘밸리의 유명 CEO들이나 투자자들도 열렬히 참석하면서 세계는 버닝맨에 매년 주목하고 있다. 테슬라모터스의 CEO 엘론 머스크는 “버닝맨 축제에 가보지 않았다면 실리콘밸리를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한다. 2004년 버닝맨 축제에서 얻은 영감으로 미국 1위의 태양광패널업체 '솔라시티'를 설립했다. 

하지만 최근 실리콘밸리의 부호들을 비롯해 대기업 경영진, 벤처 투자자 등이 대거 몰려들면서 자본이 축제의 본질을 변질시켜 버닝맨의 문화가 퇴색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버닝맨 페스티벌이 부자들의 초호화 캠핑으로 변질되고 있으며 히피들의 마약과 섹스의 무분별한 행태가 사회문제로 대두되기도 한다. 어떤 일이든 명암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순수하게 시작된 놀이가 유명해지기 시작하고 사람들의 관심을 끌면서 최초의 취지와는 상관없는 일로 구설수에 휩싸이게 되기도 한다. 그러나 참가자들이 밝히는 버닝맨의 묘미는 모든 사람이 자신이 원하는 모든 종류의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축제의 마지막 하이라이트는 사막 한가운데서 커다란 목조 인형 버닝맨(Burning Man)을 불태운다. 버너들은 불길을 바라보며 자신을 뒤돌아보며 연대감을 안고 각자의 삶의 자리로 돌아갈 마음의 준비를 한다. 며칠 동안 공들여 만든 모든 것을 부수고, 태우고, 완전히 소모한 뒤에 사막은 아무 일이 없다는 듯 다시 예전의 모습으로 복원된다.

그러나 2017년 버닝맨 축제는 끝났으나 아직 일상으로 돌아갈 수 없는 안타까운 일이 발생했다. 마지막 날 참가자 중 한 사람이 5만 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보안 요원을 뚫고 순식간에 버닝맨 불 속으로 뛰어들었다. 스위스에 거주한 평범한 미국 시민으로 버닝맨 축제에 처음으로 참가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2017년 ‘블랙 록 시티’는 일주일 동안 세상에서 가장 자유로운 도시로 존재하다가 불현 듯 아무것도 남기지 않은 채 사라지고 사막에는 비바람 남아 다시 공허해진 것이다.


◆ 주성열 세종대학교 회화과 겸임교수
-파리 1 대학 예술철학 기초박사
-성균관대 공연예술 박사 수료
-모던 라이프 아트디렉터
-단국대 서양화과 겸임교수 & 산학연구원
-연성대, 극동대 호텔관광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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