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여여행 부소산성 백제의 부흥과 망국의 한

부여 부소산성을 향한 발걸음이 가볍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의 도시인 부여에서 찬란한 백제문화를 들여다보기 위해선 부소산성을 올라야 한다. 

백제 중흥을 맞은 무령왕은 웅진의 늘어나는 인구와 좁은 땅으로 인해 새로운 왕도가 필요했다. 그 위업을 맡은 왕이 바로 성왕이다. 성왕은 즉위 초 중국과 연결되는 해상 교통로의 요지이자 아직 개발되지 않은 사비 지역에 천도 계획을 세우고 왕도를 단계적으로 만들기 시작한다. 

▲부소산문에서 백제를 지킨 마지막 요새를 바라본다. 부소산성은 백마강변의 부소산 위에 만들어졌다. 부소산성에는 낙화암, 고란사가 있어 백제 사람들의 숨결을 느낄 수 있다. 백제 멸망의 슬픈 이야기가 바람결에 전해진다.

사비천도는 웅진 천도와는 달리 튼튼한 왕권을 기반으로 계획적으로 추진한 계획도시였다. 성왕은 한반도의 끝, 백제가 아닌 동아시아의 시작인 백제를 꿈꿨다. 사비천도의 위대한 유산은 부여 곳곳에 남아있다. 

성왕의 진취적인 기상과 개척정신은 백제의 문예부흥 시기였다. 백제 왕도 부활의 꽃을 피워 현재와 연결하고, 미래를 만들어가고 있는 부여 부소산성을 걷는다. 사비천도의 정신을 바탕으로 유연하고 두려움 없이 역사를 펼쳤던 성왕의 숨결이 들려온다.

▲부소산문에서 태자골 숲길을 걷는다. 백제 왕자들의 산책로를 걸으며 심호흡을 한다. 봄을 맞는 행복한 웃음소리에 새순의 싱그러움이 전해진다.

부여 부소산성은 백제 사람들의 의로운 땅이다. 부소산성은 백제의 성터로서 평상시에는 왕궁의 후원이었고 전쟁 시에는 최후의 방어성이었다. 부소산성을 오르는 입구에 백제의 세 충신 성충과 흥수와 계백을 기리는 사당이 있다. 그들은 모두 나라가 위기에 빠졌을 때 나라를 위하여 목숨을 버린 충신들이다. 

태자골 숲길을 걷는다. 백제 사람들의 의로움을 만나는 길이다. 그 의로움은 부소산성의 낙화암에 이르러 절정에 달한다. 백제 사비성이 나당 연합군에 의해 함락될 때 백제의 수많은 궁녀가 낙화암까지 쫓겨왔다가 절개를 지키기 위하여 절벽 아래 강물에 몸을 던져 죽은 비극의 장소가 바로 낙화암이다. 백화처럼 떨어진 그곳, 백화정에 올라 백마강과 부소산성의 불행하고 가슴 아픈 역사를 들여다본다. 

▲부소산성 부소산 서복사지다. 서복사지는 폐사지로 백제의 왕궁으로 추정되는 관북리 유적지와 가까운 곳에 있어 왕찰이다. 부소산성은 그 성격이 궁원에 속한 궁실의 후원과 같은 역할이었다.

높이 40ｍ 절벽인 낙화암에 앉아 봄바람을 맞는다. 바람결에 의자왕과 삼천궁녀의 전설이 전해진다. 삼천궁녀가 꽃잎처럼 백마강에 몸을 던진 이곳에서 눈을 감고 바람의 소리를 듣는다. 어디서부터 전해졌는지 모르지만 백제의 궁녀가 삼천 명이었다는 기록은 없다. 조선과 고려의 궁녀도 5백 명을 넘지 않았다.

백제의 마지막 왕인 의자왕을 폄하하고자 삼천궁녀와 놀아난 방탕한 왕으로 말한다. 그러나 역사는 그렇지 않다. 삼국사기에는 '부모에게 효도하고 형제에게 우애가 있어 해동의 증자라고 일컬었다'라고 한다. 

▲백제 사람들의 의로운 전설을 만난다. 부소산성 낙화암 백화정이다. 백마강을 내려다보듯 우뚝 서 있는 바위 절벽이 낙화암이다. 낙화암은 사비성이 나당 연합군에게 유린될 때, 수많은 백제 여인들이 꽃잎처럼 백마강에 몸을 던졌다는 전설이 깃든 곳이다

낙화암도 궁녀의 죽음을 아름다운 꽃이 떨어지는 것에 비유한 후대의 표현이다. 삼국유사에는 타사암, 곧 사람이 떨어져 죽은 바위로 기록돼 있다. 높이 40m 절벽 낙화암 앞에 앉아 백제 이전부터 지금까지 쉼 없이 흘렀을 백마강을 바라본다. 

백마강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아무리 둘러봐도 삼천궁녀가 뛰어내릴 만한 곳이 아니다. 백제가 멸망하는 순간, 적에게 능욕을 당하느니 차라리 죽음을 택한 궁녀의 비장한 역사가 눈앞에 펼쳐진다. 

이곳에는 조선 숙종 때 석벽 홍춘경이 와서 한시 '부소 낙화암'을 읊어 낙화암이 더욱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낙화암 정상에는 궁녀들의 원혼을 달래주기 위해 지난 1929년 세운 백화정이 있다. 백화정이란 이름은 중국 소동파가 해주에 귀양 가 있을 때 성 밖의 서호를 보고 지은 '강금수백화주'라는 시에서 유래했다.

▲백제 사람들의 의로운 전설을 품은 백마강에는 황포돛대가 그림 같은 풍경을 선사한다. 백마강은 부여를 흐르는 금강의 다른 이름이다.

부소산성은 산봉우리를 머리띠 두르듯 쌓은 테뫼식 산성과 골짜기를 이용해 성을 만드는 포곡식 산성이 혼합된 복합식 산성이다. 성벽 축조 방법은 점질토와 마사토를 번갈아 가며 일정한 두께로 다져 올린 판축 기법이 사용됐다. 성곽의 총 길이는 2.2㎞ 정도다. 고대 중국, 일본과의 교역로였던 백마강이 유유히 흐르고 있다. 

사비는 웅진과 달리 충적평야 등 넓은 평야 지대를 끼고 있어 경제적으로 풍족할 뿐만 아니라 고대 중국, 일본과의 교역로 역할을 했던 해상 교통로의 요지였다. 

▲삼천궁녀의 넋을 기리는 사찰 고란사다. 이 절은 원래 백제의 왕들을 위한 정자였다. 또 궁중의 내불전이었다. 백제가 멸망할 때 낙화암에서 사라져간 삼천궁녀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1028년, 고려 현종 19년에 지은 사찰이다.

백마강을 끼고 있는 부소산은 해발 106m의 나지막한 구릉이다. 백화정에서 나와 가파른 돌계단을 밟으며 내려간다. 삼천궁녀의 넋을 기리기 위해 세운 고란사가 있다. 

고란사는 백마강을 바라보고 있다. 극락보전에는 삼존불이 있다. 아미타여래, 대세지보살, 관음보살이다. 관음보살은 백의 불상이다. 백의 보살은 자기 몸을 태워서 일반인을 극락세계로 인도한다. 

극락보전을 둘러본다. 심우도가 그려져 아름답다. 고란사 뒤 바위에 고란정이 있다. 약수를 떠 갈증을 해소한다. 고란초가 자라는 고란수를 먹으면 삼 년이 젊어진다. 믿거나 말거나지만 역사는 항상 신비스럽다. 

고란 약수를 백제의 왕들이 마신다. 마침 약수터 주변에 자생하는 기이한 풀이 있어 잎 하나를 물동이에 띄우니 마음이 평안하다. 그래서 고란 약수다. 이 풀이 강가 절벽이나 산지 계곡 등 습도가 일정하게 유지되는 바위의 좁은 틈에만 자라는 고란초다. 지금 이곳에는 고란초가 없다. 사람들의 발길이 잦으니 사라진 거다. 더불어 고란수에 지붕을 올리니 고란초가 자랄 수 없다.

고란사에서 나와 백마강으로 내려가면 구드레 나루터로 가는 선착장이다. 왔던 길을 되짚어 올라 처음 들어왔던 부소산문으로 향한다. 

▲부소산성 고란사 삼성각이다. 고란사의 역사에는 일본 소녀와 관련한 이야기도 전해진다. 때는 서기 580년 시마메, 도요메, 이시미라는 일본 소녀 셋이서 불교를 알고 비구니가 되기 위해 목숨을 걸고 현해탄을 건너 유학의 길을 이곳 고란사로 택했다고 한다. 이후 고란사의 풍경에 반한 일본 비구니들은 이곳에서 불심을 닦았다.

백제는 나라를 세운 뒤 세 차례 도읍을 세웠다. 처음에는 한강 유역의 한성에 자리를 잡았으나 고구려 장수왕의 위례성 침범으로 한강 유역을 빼앗긴 백제는 웅진으로 도읍을 옮겼고, 서기 538년 웅진 시대를 마감하고 사비로 천도한다. 

백제의 마지막 도읍지 사비는 부여로 성왕이 백제의 중흥을 꿈꿨던 고도이다. '부여'라는 말은 '날이 부옇게 밝았다'라는 뜻으로 서기 660년까지 123년 동안 백제의 찬란한 문화를 꽃피우고 멸망의 아픔을 맞았던 백제인의 숨결이 살아있는 땅이다.

▲부소산 고란사 아래에는 선착장이 있다. 고란사 선착장에서 황포돛배를 타고 백마강을 한 바퀴 돈다. 백마강에서 부소산성과 낙화암을 바라보며 백제 망국의 슬픔을 위무한다.

Tip
충청남도 부여 부소산성 찾아가는 길 주소: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쌍북리 산 4 
전화: 041-830-2880 

엄금희 기자  ekh@travel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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