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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횡성여행 ①풍수원 성당 107년 역사의 향기 속으로
트래블데일리 | 승인2015.07.04 11:21

작지만 아름다운 성당이다. 로마네스크 양식의 풍수원 성당은 강원도 횡성군 서원면 유현리에 있는 천주교 원주교구의 성당이다. 강원도의 시도유형문화재 제69호로 지정되어 있다.

 

한국인 신부가 지은 한국 최초의 천주교 성당이고 한국에서 네 번째로 지어진 성당이다. 1907년 신자들의 손에 의해 직접 지어진 성당은 107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아름다운 모습이다.

 

1920년 이래 계속되고 있는 성체현양대회 때면 전국에서 1500여 명이 넘는 신도들이 이 성당으로 찾아온다. 또한 이 교회 본당 옆에 위치한 구 사제관은 원형이 비교적 잘 유지된 벽돌조 건물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아 2005년 등록문화재 163호로 지정되었다. 문화재청에 의한 ‘대한민국 근대문화유산’이다.

 

1801년, 순조 원년 신유박해 이후 1802년 혹은 1803년경 경기도 용인에서 신태보(베드로)를

중심으로 하여 40여 명의 신자들이 8일 동안 피난처를 찾아 헤매다가 정착한 곳이 바로 한국 최초의 천주교 신앙촌인 풍수원이다.

 

1866년, 고종 3년 병인박해와 1871년, 고종 8년 신미양요 때 신자들이 피난처를 찾아 헤매던 중 산간벽지로서 산림이 울창하여 관헌들의 눈을 피하기에 알맞은 곳이라 사방으로 연락해 신자들을 모아 한 촌락을 이루어 일부는 화전으로, 일부는 토기점으로 생계를 유지하였다.

 

1888년 6월 20일 조선교구장 민 대주교께서 본당을 설립하고 초대 주임신부로 프랑스 르메르(Le Merre)이 신부가 부임하여 춘천, 화천, 양구, 홍천, 원주, 양평등 12개군을 관할했으며 당시 신자 수는 약 2,000명이었고 초가집 20여간을 성당으로 사용하였다.

 

1896년 2대 주임으로 정규하(아우구스띠노)신부가 부임해 중국인 기술자 진 베드로와 함께 현재의 성당, 벽돌 연와조 120평을 1905년에 착공, 1907년에 준공하여 1909년 낙성식을 가졌다.

 

신자들이 벽돌을 굽고 아름드리나무를 해오는 등 자재를 현지에서 조달했다. 강원도 전체와 경기도 일대의 성당은 풍수원 성당에서 분당된 것이다. 그런데 본 성당은 지난 1982년 강원도에 의해 지방문화재 제69호로 지정되었다.

 

아울러 그리스도의 성체와 성혈 대축일을 기해 1920년에 제1회 성체대회가 실시되어 매년 행사가 치러지고 있다. 6·25한국동란으로 3년간 성체대회가 중단된 아픔이 있다. 신앙의 요람 터이며 선조들의 얼이 담겨 있는 역사의 현장인 이곳에서 30여 명에 달하는 한국인 사제들이 탄생되어 풍수원 성당은 하느님의 축복을 받은 땅이다.

 

예수의 고난을 따라 묵상하는 ‘풍수원 십자가의 길’ 제단 앞에서 기도한다.

 

“오, 주 예수님! 주님을 죽음으로 이끈 이 고통스러운 길을 당신은 얼마나 크신 사랑으로 지나가셨나이까! 그런데도 저는 너무나 자주 주님을 저버렸나이다!

이제 온 마음을 다하여 주님을 사랑하오며, 진심으로 제가 지은 죄를 뉘우치나이다. 예수님, 저를 용서하시어 주님을 따라 이 길을 걷게 하소서.

 

주님께서 목숨을 버리셨으니 저도 주님께 대한 사랑으로 목숨을 바치고자 하나이다. 예수님, 당신 사랑 속에서 살기를 원하오며, 당신 사랑 속에서 죽기를 원하나이다.

 

사랑하올 예수님! 주님께서는 저를 지극히 사랑하셨기에 죽음의 길도 마다않고 가셨나이다. 그러니 저도 이제는 주님을 따라가게 하여 주소서. 주님과 더불어 주님을 위하여 저도 죽고자 하나이다. 예수님의 수난을 보시고 저희와 온 세상에 자비를 베푸소서!“

 

‘십자가의 길’은 예수가 사형 선고를 받은 후, 십자가를 지고 갈바리아산에 이르기까지 가던 중에 일어났던 14가지 중요한 사건을 성화로 또는 조각으로 표현하여 축성된 십자가와 함께 성당 양벽에 걸어둔 14처를 하나하나 지나면서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을 묵상하며 바치는 기도다.

 

이것은 초기 교회 시대에 예루살렘을 순례하던 순례자들이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가신 길, 빌라도 관저에서 갈바리아산 십자가가 세워진 곳까지 약 1317보의 거리, 약 800m를 실제로 걸으면서 기도했던 것에서 비롯된 것이다.

 

예수 수난과 죽음의 장면을 순례함으로써 영신 생활에 도움을 준다. 이 십자가의 길은 초세기부터 많은 이들이 경의를 표하는 길이었고, 콘스탄틴 대제 이후, 신자들의 순례지의 목적지가 되었다.

 

380년경 성녀 실비아의 기록을 보면 이 길에서 기도하며 순례하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5세기 볼로니아 성 스테파노 수도원의 주교 성 빼트로니우스는 성지와 같은 길을 만들어 기도하며 묵상하고 걸었다고 한다. 12~14세기에 성지를 방문한 순례자들은 이 길을 ‘수난의 길, 거룩한 길’이라고 하였다.

 

1420년에 선종한 도미니꼬회 소속 알바르 복자가 성지를 순례한 후, 성지를 순례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창안한 기도라고도 한다. 그러나 이 순례지가 지리적 정치적인 장애를 받게 되자 15~16세기에 유럽에서는 성지 모형의 십자가의 길을 만들어 기도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각처의 숫자와 기도의 구체적인 형태는 결정되지 않은 상태였다.

또 이 기도는 특히 프란치스코 수도회에 의해 널리 전파되었는데 1688년 교황 복자 인노첸시오 11세는 이 수도회의 모든 성당에 십자가의 길 설치를 허용했고 예수 수난을 묵상하며 이 기

도를 경건하게 바치는 자에게 전대사를 허락했다.

 

1694년 교황 인노첸시오 12세는 이 특전을 확증했으며 1726년 교황 베네딕도 13세는 모든 신자들이 이 특전을 얻을 수 있게 하였다. 1731년 교황 클레멘스 12세는 모든 교회에 십자가의 길을 설치할 것을 허용했으며 처의 숫자도 14처로 고정시켰다.

 

19세기에 이르러 이 신심은 전 세계에 퍼져 예수님의 수난을 묵상하는 가장 좋은 기도로 특별히 사순절에 널리 행해지고 있다. 성당이나 그 밖의 장소에서 개별적으로 혹은 사제와 함께 단체로 행해진다. 각처를 순례하듯이 옮겨가는 것이 원칙이나 단체로 할 때는 대표만 움직이고, 다른 사람들은 움직이지 않고 그 방향을 따라 해도 좋다.

 

축복의 땅 풍수원 성당에서 서기 어린 빛을 본다.

휴식과 치유의 땅에서 “기쁘고 떳떳하게 우리는 이 터에서 열린 마음으로 소박하게 살고 생명을 소중히 여기며 서로 나누고 섬김으로써 기쁨 넘치는 하느님 나라를 일군다”라는 선언문을 본다.

“모든 일은 사랑으로 하고 강물은 흘러야 한다”라는 진리로 다시 태어나는 마음을 다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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