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여행이다.
어김없이 초록이 지쳐 단풍드는 계절도 돌아오고 팬데믹이라는 막막함을 걷어낼 엔데믹 시대가 봄꽃처럼 열렸다.
구름에 달 가듯이 스며드는 계절에 닫힌 마음을 풀고 맘 편히 떠나고 싶다. 팬데믹으로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고대 그리스인의 말은 누구나 쉽게 공감하는 말처럼 들린다.

대부분 사람은 사회와 단절된 상태로는 온전한 삶을 유지하기 어렵고, 문화적 교류 없이는 완전한 삶을 영위할 수 없다. 엔데믹으로 이동하면서 개인이 추구하는 취미활동인 놀이문화와 여행은 급격히 확장할 것이라고 예견한다.

‘펜트업 효과(Pent-up Effect)’로 ‘보복 소비’나 ‘보복 여행’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억압받았던 욕망의 소비가 하나의 트렌드처럼 가시화할 것이란 전망이다. ‘워라밸’, ‘욜로’ 등 나를 중심으로 하던 라이프스타일의 유행도 회복될 것이다.

팬데믹 이후 여행업계는 디지털 시대의 변화를 경험했던 중장년층과 변화를 추구하는 MZ 세대에게 주목한다. 특히 취향에 맞는 콘텐츠로 풍부한 경험을 추구하는 시니어 여행의 관심도 증가할 것으로 예상한다. 팬데믹 이후 모든 변화에는 놀이문화에 관한 관심이 중심에 자리하고 있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누구나 바라는 여행도 일종의 놀이로서 문화다.
놀이는 생명체가 함께 즐기며 살아가려는 능력과 소통의 존재 방식 중 하나다. 호이징가는 ‘놀이는 무엇보다도 자유로운 행위며 노는 것이야말로 인간의 본질’이라고 주장한다. 놀이는 인간의 탄생과 동시에 발생했을 것으로 보며 인류 문화 탄생과 확산의 기원이 놀이 정신에서 나온다는 주장도 있다.

놀이의 어원은 ‘악기를 연주하다’라는 말에서 출발하지만 인간 또한 연주를 위한 악기 그 자체로서 놀이는 삶의 근본인 것이다. 일상에서 시를 짓고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며 신명 나게 온몸으로 연주를 즐기던 것이 놀이문화의 기원이다. 놀이를 통해 공통의 리듬을 만들어 즐기는 과정에서 타자와의 심리적 경계는 완화되고 공동체의 삶을 살아가는 에너지를 얻는다. 안타깝게도 팬데믹으로 인하여 개인과 공동체의 놀이정신 또한 소멸위기에 놓여 있었다.

소멸위기에 놓인 놀이정신과 놀고 싶은 욕망은 사이버공간으로 이동하면서 다양한 영화와 게임 콘텐츠 산업이 주목받았다.

팬데믹으로 놀이정신이 위기와 욕구를 충족시킬 수 없었던 지구촌 사람들은 새로운 비대면 형식의 놀이에 몰입한 것이다. 게다가 팬데믹 상황에서 OTT라는 새로운 영상 플랫폼이 등장하였고, N 사의 오리지널 시리즈 <오징어 게임>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엄청난 결과를 가져왔다.

신드롬을 일으킨 <오징어 게임>은 아마도 억압된 놀이정신의 소멸과 놀이욕망을 해소한 드라마였기에 지구촌 사람들에게 환영받았을 것이다. 이웃과 함께할 수 없었던 고립과 독립된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하는 문제가 사유의 중심에 있었을 것이다.

한 편의 드라마였지만 놀이문화에 대한 보편적인 관심을 촉발한 엄청난 콘텐츠로 한층 더 한류의 호기심이 거세지는 기폭제가 되었다. 이미 K 콘텐츠의 높은 위상으로 세계인들에게 한국은 흥미로운 볼거리, 놀거리, 먹거리가 풍부한 최상의 여행지로 부상했으며, 문화 지각변동에 한국이 중심에 있다는 점을 또다시 증명한 것이다.

<오징어 게임>에 등장하는 놀이는 어린 시절 누구나 경험했을 법한 것들이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는 물론 달고나, 구슬치기, 딱지치기, 비석치기, 줄다리기까지 다양한 놀이로 구성된 드라마였다. 그리고 <오징어 게임>의 인기에는 놀이정신의 위기를 극복하려는 의지와 순수한 ‘놀이’의 각색을 통한 팬데믹 상황의 치유와 보편적인 사회문제에 대한 고민이 녹아들었다.

드라만 한 편으로 달고나 같은 추억의 먹거리이자 놀이는 이제 세계인들이 즐기는 보편의 놀이문화로 사랑받고 있다. 인간이 자연과 상생하며 탄생한 상징적인 놀이문화와 놀이정신은 공동체가 함께 살아가는 중요한 삶의 방식이었으며, 새로운 지식과 창의성을 계발하고 혁신적인 가치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이 동물과 구분되는 가장 중요한 특징은 상징과 상상력으로 세상을 바라본다는 점이다. ‘상징하는 인간(Homo Symbolicus)’으로 정의하듯 인간은 고립되거나 타자의 문화와 교류 없이는 다양한 문화를 탄생시키기 어렵다. 재미를 추구하는 놀이는 21세기가 요구하는 가장 중요한 가치가 되었다.
재미는 의미를 낳고 의미는 창의적 아이디어를 불러온다. 인간의 본질이 놀이하는 인간(Homo Ludens)'이라고 주장하는 호이징가는 주어진 목적에 효율적으로 도달하려는 수단으로서 ‘도구적 이성’보다는 놀이를 통해 창의적 인간이길 바란다. 창의적이란 완전히 창조적인 것이 아니라 익숙했던 맥락을 다르게 바라보는 관점의 변화를 의미한다. 여행자는 타지의 색다른 ‘플러그 소켓’만 보고도 고정된 관념을 가로질러 생각의 구조가 변한다.

다시, 여행이다.
재미를 통한 의미와 관점을 변화시키기 위해서 자유롭게 여행을 나서야 하는 시간이 선물처럼 왔다. 우선은 함께 즐기는 축제가 아니라 나 스스로 노는 일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리프레쉬 차원에서의 뉴노멀(New Normal)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팬데믹은 평온한 일상과 여행산업에 균열이 발생했고 그 균열로 인해 심각하게 삶과 죽음이라는 실존을 고민하게 만든 동시대 최악의 사태였다.
 ‘코로나19’로 인한 일상의 균열은 개개인에게 새로운 사유와 또 다른 생성을 위한 기회이기도 하다. 생명체가 유기적으로 살아가는 존재 방식에 다시 한번 고민하게 만드는 심각한 사건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균열은 실존에 대한 반성과 고민으로 시작된 사유는 인간의 삶과 가치관을 변화시킬 수 있다.

개개인의 행복이라는 감정은 소소한 일상에서 시작된다. 친구와 만나 시시껄렁한 이야기가 힐링이 되고 싱거운 이야기에도 기쁨의 에너지를 얻고 함박웃음도 짓는다. 현대인의 삶에 있어서 휴식만큼 소소한 여행은 간절하다. 누구에게나 자유여행이라는 욕망을 품고 삶을 지탱한다. ‘논다’라는 개념에는 개인적인 휴식이라는 것도 포함된다. 놀이가 다수의 공간으로 들어가는 축제의 형태라면 휴식은 다수의 공간에서 혼자만의 공간으로 이동하는 것이다. ‘멍때리기’는 대표적인 휴식의 예이며, 홀로 떠나 낯선 곳에서 잠시 머무는 일은 누구나 바라는 휴식의 이상적인 모습이다. 바캉스와 홀리데이라는 말도 ‘비운다’라는 의미와 관련이 있는 말이지만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일탈을 통해 새로운 에너지로 회복하려는 것이다.

엔데믹 시대는 거창한 관광보다는 소소한 여행이 가치를 지니며 어딘가로 떠나는 것이 아니라 어떤 방식의 여행인지가 중요하다는 점이다. 혼자 떠나거나 개별적으로 활동하는 얼로너(aloner)들은 점점 늘어날 것이다.
'You Only Live Once(당신은 한 번뿐인 인생을 산다)'라는 욜로의 가치관은 더욱더 유행하게 될 것이다. 트레킹(trekking)이나 느리게 걷는 산보 그리고 자연으로부터 위안을 받는 형태의 여행에 관심도 집중될 것이다.
이젠 파노라마식 관광보다는 문화예술을 통해 심오한 사색이 필요한 여행자도 늘어날 전망이다. 죽음이라는 실존의 경험 앞에 모두는 숙연함을 깨닫게 되었으며, 이런 가치관의 변화는 진지함을 해소하기 위한 특별한 가치를 지닌 역사적인 장소나 성스러운 순례지도 특별한 여행자를 위한 소중한 장소일 것이다.

마슬로우의 5단계 욕구설이 주장하는 것처럼 엔데믹 시대엔 생존과 안전의 욕구는 어느 정도 해소될 것이다. 이후 인간은 감동적인 삶을 보충하기 위해 가장 최고의 단계인 자아실현의 욕구를 향해 빠르게 행동할 것이다.

개인에게 몰입하고 아름다운 가치나 이상을 실현하려는 집중적인 활동이나 여행이 개인적이거나 소규모 차원에서 이뤄진다는 것이다. 놀이로서 여행의 몰입은 일상에 균열을 내고 낯선 공간에 접속하여 발생하는 가치에 주목한다는 점이다. 균열은 새로운 에너지가 발생하는 생성의 장소이기도 하다.

여행은 작은 일탈이며, 일탈은 일상이 뜻하지 않게 변주되는 것이다. ‘자유’의 소극적인 의미는 열망을 위한 일탈이다. 자유인은 자신을 위해 중요한 가치를 세우고 추구하며, 자기만의 개성을 확인하고 공동체를 위한 에너지를 조화롭게 활용할 수 있는 사람일 것이다.

당분간 홀로 천재들의 도시 피렌체를 느리게 걷고, 인상파 예술가들이 살다간 아를르의 골목을 유유자적 걸어도 좋을 것이다. 북촌을 걷다가 뜻하지 않은 윤동주나 이상을 만나는 황홀한 기쁨을 얻을 수 있다.

어디든 내가 발을 딛고 가는 곳이라면 기쁨의 에너지가 발생하는 곳이리라. 가을의 문턱을 넘어서고 계절을 온몸으로 끌어안은 초목은 차가운 기온으로 떨고 있다. 홀로 있음이 외롭고 춥더라도 ‘놀이하는 인간(Homo Ludens)’이기에 삶의 주인인 나를 위로하기 위해 나만의 축제를 만들어야겠다. 놀이 같은 축제, 휴식 같은 여행에서 신선한 자극을 얻고 벅찬 기쁨의 에너지로 나 자신을 채워야겠다.
알베르 카뮈는 가을이 ‘모든 잎이 꽃이 되는 두 번째 봄’이라 전한다. 이 계절에 남아 있을 팬데믹의 우울감도 축제가 끝나면 곧 증발할 것이다.

다시, 축제의 시간이다.

◆ 주성열 세종대학교 회화과 겸임교수
-파리 1 대학 예술철학 기초박사
-성균관대 공연예술 박사 수료
-모던 라이프 아트디렉터
-단국대 서양화과 겸임교수 & 산학연구원
-연성대, 극동대 호텔관광 외래교수

온라인뉴스팀  td@travel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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