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드 코로나 시대와 타자를 향하는 욕망
‘공항에 한국말만 들렸어요’, ‘여행지에 도착하니 어딜 가도 한국말’이라는 뉴스를 듣는다. 최근 마이크로 관광(micro tourism)이나 오버투어리즘(over tourism)으로 많은 여행자가 일부 특정 지역으로 몰리는 경향을 두고 전해지는 소식이다. 가까운 거리와 가성비라는 조건이기도 하지만 위드 코로나 시대에 소비 욕망의 폭발과 과시를 위한 지향적 소비가 여행자들의 답답한 마음을 사로잡았을 것이다. 

장기간 항공이동의 통제로 나타난 ‘보복 여행’도 이를 대변하는 듯하다. 아직도 팬데믹에 대한 두려움이 있고 소소한 불편함도 사라지지 않았으나 간편하고 경제적인 부담이 적은 작은 여행 상품에 안정감을 느껴 선택했을 것이라는 해석도 가능하다. 

디지털 시대에 여행의 목적과 의미는 대체로 특별하거나 가벼워졌다. 특히 새로운 세대를 중심으로 플랫폼과 소셜미디어에 콘텐츠를 올려 인증하고 과시하려는 여행이 대세가 되었다. 소셜미디어 대중화는 여행업이 급성장하도록 이끄는 매개체이기도 하다. 

특히 위드 코로나 시대가 시작하면서 여행 관련 블로그나 소셜미디어의 회원 수가 빠르게 증가하는 만큼 수동적인 여행의 욕망도 폭발적으로 재생산된 것이다. 인생샷이 자신만의 멋진 콘텐츠라지만 이면에는 타자의 욕망과 관련된 인정과 평판을 얻기 위한 목적으로 올린 시각적 콘텐츠가 다방면으로 노출되어 금전적인 보상이 따라오기를 바라는 부분도 있어 보인다. 일부 유튜버나 인플루언서들은 기업들과 손을 잡고 상업적인 인프라 구조 속으로 깊이 관여하기도 한다. 

오버투어리즘의 구조는 능동적 여행 의지와는 달리 이미 노출된 정보를 활용하고 타인의 욕망에 편승하려는 경향이 심화할 것이란 전망이다. “욕망은 타자의 욕망을 따른다.”라는 라캉의 주장처럼 개인의 욕망은 타자의 욕망과 밀접한 관계를 맺는다. 영화 촬영지나 유명인이 출연한 장소를 확인하는 여행, 맛집을 찾아 순서를 기다리고 환상적인 여행지를 그리고 동경하는 마음에는 이미 타자의 욕망을 의식하고 보상과 인정받기를 바라는 심리가 포함되어 있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지극히 사적 욕망으로 보이는 식사를 선택하는 일에도 타자를 향하는 욕망이 작동한다고 짐작할 수 있다. 이처럼 새로운 세대에게 여행은 일종의 콘텐츠 도구이면서 경제적 가치와 사회적 존재감을 확인하는 수단으로 추구되기도 한다. 

소셜미디어를 통한 콘텐츠의 생산 소비는 저마다의 인정 욕망과 평판으로 이어지는 경제적 행위이다. 여행지 선택에 개개인의 특별한 가치와 자아 발견이라는 전제조건도 포함하고 있을 것이나 팬데믹 이후 소셜미디어의 공감과 평판, 홈쇼핑 광고, 심리적 보상 차원, 경제적 & 지리적인 이유, 디지털 공간에서의 인정 욕구 등이 여행을 위한 예비단계 정도임을 예측할 수 있다. 
한편으로는 모든 일상이 단절된 상황에서의 여행 욕구는 새로운 형태의 색다른 여행으로 전개되면서 강렬한 욕구만큼 창의적인 여행 방식과 이와 관련된 새로운 개념과 용어가 탄생한다. 여행을 떠나는 일이 자유의지에 달려 있다고는 하지만 결국 사회적 욕망 중 하나이며 한편으로는 유행처럼 흘러가는 현상이기도 하다.

◆지속 가능한 여행을 위해
여행은 자유의지에 따라 많은 부분을 스스로 판단하고 선택한 후 원하는 곳으로 떠나는 개인적인 일이다. 그러므로 여행의 모범 사례는 있어도 정답은 없을 것이다. 소셜미디어의 정보를 얻어 떠나지만 뉴노멀 시대에 구별되는 다변화의 핵심 중 하나는 자연 친화적인 장소를 추구하거나 개인 중심의 몰입형태라는 ‘주제 여행’이 주목받고 있다는 것이다. 

테마 여행은 몰입형태의 개별적인 투어에 있어서 가장 중심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자연 친화와 캠핑, 식음료 여행, 이벤트와 축제, 예술가의 활동지역 탐방, 스포츠 투어, 농가체험, 의료관광, 다크 투어 등이 세부적으로 기획만 된다면 여행자의 다양한 요구를 반영하고 수요를 재창출할 수 있다. 한편으로 팬데믹으로 인해 ‘지속 가능한 여행’이라는 생태계를 지키는 건강한 여행도 확대되는 중이다. 여행지의 쓰레기를 줍는 플로깅(plogging), 제로 웨이스트(Zero waste), 저탄소 여행 등이 여행자에게 중요한 화두가 되었다. 

이제 여행은 소셜미디어라는 가상의 공간으로 깊게 파고드는 한편, 불특정 다수가 함께하던 ‘패키지 투어’라는 문지방도 넘어서고 있다. 많은 사람이 다녀온 익숙한 장소에 대한 과도한 욕구는 줄어들고 디지털 플랫폼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 특별한 체험을 추구한다. 개별적인 테마 여행이거나 뭔가 나만의 추억과 의미를 줄 수 있는 곳으로 여행자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는 것이다. 

코로나 위기 속에서 여행에 접근하는 태도와 형식 그리고 장르의 변화는 다채로웠는데 일반적으로 여행객은 불안과 치유 그리고 안전을 고민하게 된 것이다. 아웃바운드(outbound)가 위축이 되면서 인바운드에 대한 관심과 자연 친화적인 장소, 로컬(local)과 비대면(untact) 여행이라는 안전욕구의 시각에서 여행의 잠재적인 욕망은 새로운 방향성을 추구하였고, 프라이빗 여행이나 로컬 트랩이라는 소소한 방식으로 서서히 진행되었다. 

현실 상황의 답답함을 해소하거나 여행자의 욕구를 해소하기 위해 다양한 형태의 증강현실과 메타버스 그리고 랜선 여행도 곳곳에서 추진되었고, 트레킹, 솔로 캠핑, 차박, 백패킹 등의 여행이 확산하였다. 이제는 일정한 곳에서의 힐링을 위한 ‘머뭄’과 ‘휴식’이라는 웰니스라는 개념도 여행의 한 장르가 되었고, 호캉스, 워크케이션, 스테이케이션이라는 프로그램도 상품화되었다.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이 2023-25년 관광 트렌드로 10가지 유형을 발표했는데 뉴노멀 시대의 워케이션, 웰니스 치유 여행, 탄소 중립 여행, 초개인화로서의 나노 여행, K-컬쳐의 스펙트럼 확장, 차별 없이 모두가 즐기는 여행, 디지털 관광, 일상과 여행의 경계 해체, 지역관광이 그것이다.

◆방황하는 자가 길을 만든다
능동적인 여행은 여행 자체가 주는 기쁨이 있기에 낯선 곳으로 흔쾌히 떠난다. 나만의 세계를 고민하거나 개척하는 의욕적인 삶을 향하는 일시적인 일탈이다. 알베르 카뮈는 여행의 정의를 ‘정신의 소독’이라고 말한다. 

수동적인 삶으로 멈추었던 일상을 벗어난 능동적인 여행은 나를 일상의 묵은 때를 지우는 소독의 공간으로 이동시키는 것이다. 그 공간에서 오롯이 나를 만나는 일이 진정한 여행의 목적일 것이다. 이제 혼자만의 자유로운 자신과 만나고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면서 새로운 사유가 싹트고, 쉼을 통해 다른 가치가 세워진다. 여행에 대한 의지는 열정의 크기와 생각하기에 달렸다. 생각이 부지런해야 여행에 대한 의지도 생기는 듯하다. 

“속지 않는 자들이 방황한다.”라는 라캉의 말처럼 진정한 여행자들은 어느 정도의 방황을 감내하는 체험을 선호한다. 소셜미디어를 통해 쉽게 얻은 정보를 통한 편안한 여행보다는 방황하면서 얻는 쉽게 증발하지 않을 추억을 추구한다. 

여행(travel)이 노동(travail)의 일종인 것처럼 새로운 길은 방황하던 자가 만들어 낸 창작물이다. 낯선 공백을 만나 우연히 마주하고 무언가를 채워나가는 여정이 여행이 주는 신선한 가치일 것이다. 상징계라는 사회적 규범과 타자에게서 벗어나 삶의 진정한 주체를 확인하기 위해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낯선 곳으로 향하는 것이다. 

여행이 삶을 풍요롭게 하기를 원한다면 타자의 시선이 닿지 않는 어두운 공백을 뚫고 이질적인 존재를 향해 두렵지만 나아가야 한다. 비장소인 아토포스(atopos)를 만나 새로운 장소인 토포스(topos)를 개척하는 주인공이 되는 것이다. 

현실에 적응하면서 익숙해진 삶을 흔들고 정상성을 무가치한 것으로 만들어 나를 고통(travail)으로 이끄는 증상을 만나 방황하는 나를 발견하는 일이 여행(travel)이다. 진정한 내면의 잠재적 욕망을 발견하고 지속 가능한 여행을 위한 깨달음도 방황하던 여행(travail)을 통해 얻을 수 있다. 

지구촌은 유행병이 모두를 죽음으로 몰고 가는 불안한 상황을 체험했다. 이후 ‘펜트-업 효과(Pent-up Effect)는 어느 정도 유지되겠지만 'You Only Live Once(당신의 한 번뿐인 인생)'라는 욜로의 가치관은 더욱더 중요해질 것으로, 자유인으로서 개인은 소소한 테마 여행을 추구할 것이다. 어디가 아닌 어떤 방식의 여행이라는 것에 심오한 의미와 가치를 두고 사색한다. 나를 지탱하던 타자의 욕망이 나의 진정한 욕망이 아니었음을 알게 되었음이다. 

괴테는 “단순히 나를 가르치기만 하는 여행이라면 싫어할 것이다”라고 말한다. 먼 훗날 위로를 위한 한 줌의 추억이라도 얻기 위해 떠났다가 상처를 얻고 절뚝거리며 돌아왔어도 여행의 보상은 늘 넉넉할 것으로 믿는다. 먼 훗날 생존 에너지가 고갈되었을 때라도 쉽게 흔들리지는 않을 것이다. 
카르페 디엠!(Carpe Diem)

◆주성열 세종대학교 회화과 겸임교수
-파리 1 대학 예술철학 기초박사
-성균관대 공연예술 박사 수료
-모던 라이프 아트디렉터
-단국대 서양화과 겸임교수 & 산학연구원
-연성대, 극동대 호텔관광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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