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데믹 이후 봄꽃은 유난히 밝고 빛났다. 봄을 기다리던 사람들은 오랜만에 가벼운 발걸음으로 눈부신 계절을 만끽하며 잔인한 4월을 보냈다. 미국의 시인 엘리엇이 쓴 <황무지>의 첫 구절에서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라 표현했던가. 냉혹한 시기를 견디고 새싹이 돋는 상황이 고통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4월은 진정 잔혹한 달이다. 꽃이 만발하고 초록이 물드는 신록의 계절이 불편하다는 것은 아니다.

생기 넘치는 계절과 관계없이 그늘이 짙게 드리워진 고통스런 사태를 떠올렸다. 4.16 세월호 참사, 4·19혁명, 제주 4.3 사건 그리고 타이태닉호의 침몰, 임진왜란 등 잔혹하고 암울한 사건들이 4월에도 지층처럼 엉겨있다. 이영도 시인은 <진달래-다시 4.19 날에>에서 진달래가 피면 4·19혁명으로 희생당한 젊은이의 한과 넋이 꽃처럼 붉게 물들었다는 시를 남겼다. 봄꽃이 지는 5월에도 여전히 붉게 물든 슬픔은 지워지지 않는다. 5.18 광주민주화항쟁, 아우슈비츠 수용소 탄생, 천안함 침몰 등 생각만으로도 먹먹해지는 비극적인 역사는 촘촘히 이어진다. 

‘그랜드 투어’는 인간이 남긴 찬란하고 빛나던 유산이나 장엄한 자연을 찾아가는 여행이다. 자연의 경이로운 풍광을 즐기고, 영광스러운 자들이 남긴 찬란했던 문화유산을 통해 인간의 위대한 가치와 숭고한 자연을 확인하는 여정이다. 반면 ‘다크 투어리즘(dark tourism)’은 인간이 저지른 무모한 학살과 폭력 그리고 대형 사고라는 어두운 현장을 찾아가는 다소 침울한 여행을 의미한다. 영국 글래스고 칼레도니언 대학(Glasgow Caledonian University)의 Malcolm Foley와 John Lennon이 1996년에 발표한 논문 ‘JFK and Dark Tourism’에서 처음으로 이 용어가 등장한다. ‘다크 투어’의 가치는 여행자에게 볼거리를 제공하거나 교훈을 얻기 위한 관광지가 아닌 애도의 공간인 것이다. 대규모 학살과 폭력이 난무하고 총성이 오고 간 장소가 세월의 흔적으로 덮어진 곳이라 해도 마주하는 순간 경악과 공포로 짐짓 숙연해지는 추모의 장소인 것이다. 

보도사진을 통해 끔찍한 사건의 정보를 알고 있다더라도 현장에 직접 다가선다는 것은 무언가 촉각적 효과로 인해 강렬한 느낌을 받는다. 롤랑 바르트는 사진 속에 담긴 특수한 전율이나 감정을 ‘푼크툼’이라 말한다. 현장에서의 체험은 푼크툼의 효과로 인하여 시간이 흘러도 몸으로 스며든 떨림은 강하게 남는다. 아마도 우리에게 감응(affect)을 불러오고 잊을 수 없는 전율을 느끼게 하는 것이 ‘다크 투어’의 효과가 아닐까. 사건의 정보를 전하는 기호로서 ‘스투디움’이 아닌 강렬하게 마음을 찌르고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어 소름 돋는 촉각적 효과가 애도의 현장을 방문하는 이유일 것이다. 지나간 역사적 사실은 사라지고 실체가 없지만, 현실의 층위에서 간혹 느껴지는 전율은 인간의 존엄성과 삶의 가치를 숙고하며 살아야 할 산 자들의 임무다.

다크 투어를 통해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거나 교훈을 얻으려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이유나 목적은 아니다. 삶을 영위하는 동안 비자발적인 기억을 통해 온전한 생명의 존엄한 가치를 되새기는 태도가 소중하다는 점이다. 예전에 방문했던 남영동 대공분실을 떠올리면 그들이 고통받던 고문 도구와 방의 폐쇄적 구조 그리고 조명 등이 떠오르고 그 공간에서 고문을 당했을 피해자의 짓밟힌 인권을 상상하면 너무도 끔찍하다. 김수근이 설계했다는 대공분실은 철저히 피해자를 공포와 고통으로 몰아넣기에 부족함이 없는 공간으로 설계되었다. 그의 재능이 완벽하게 구현되었다고 하더라도 건축물의 용도가 고문을 가하던 장소라는 것에 대해 침묵으로 항변하는 것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숭고한 인간의 존엄성이 고문이라는 폭력으로 행해지는 역겨운 공간에 대한 최소한의 고민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이히만의 침묵처럼 오해를 불러올 수 있다. 

비극적인 장소에서 느끼는 감정을 누군가와 공유하거나 추천해야 한다면 신중할 필요가 있다. 개인이 느끼는 특수한 감정이기에 보편의 가치로 몰아가기에는 불편함이 따른다. 누구든 과거의 아픔과 우리의 잘못을 기억하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또한, 과거의 아픔으로 교훈을 얻고 새로운 세상을 희망하는 일은 유효하지 않아 보인다. 버나드 쇼의 주장처럼 ‘우리가 역사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역사에서 아무것도 배울 수 없다는 점’이라고 실수를 반복하는 인간의 우매함을 조롱한다. 투키디데스의 주장처럼 역사는 영원히 되풀이되어도 실수를 예측하지 못한다. 오류가 아닌 반성의 역사가 진정 존재한다면 이미 쓰라린 교훈을 통해 세상은 유토피아에 근접하였을 것이다. 이미 폭력도 전쟁도 사라졌을 것이지만 여전히 불행한 역사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반복된다는 점이다. 오히려 희생자들과 피해자들이 피를 흘린 잔혹한 현장을 다가서는 일이 고통스럽기에 근대적인 강박관념으로 보자면 흑역사는 잊어버리거나 털고 가자는 셈의 논리가 있다. 

정치적으로도 과거의 어두운 기억을 지우려는 타살행위가 새로운 프레임처럼 작동한다. 과거를 잊고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논리다. 그러나 과거의 극복이라는 근대 이념은 어두운 측면은 묻어버리거나 감추고 새로운 밝은 세상만을 바라보라는 주장은 선동이다. 미래가 과거 없이 다가오는 것은 아니다.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그 어떤 훼손도 정당화해서는 안 된다. 인종차별 등 인간에 대해 비아냥거림은 어떤 명분도 앞세워 용서받을 수 없다. 옳고 그름의 문제는 뒤로하고 폭력에 대한 정당성 문제는 심각한 것이다. 교훈을 얻는 문제는 각자 개인에게 달렸다. 이념이나 신념이 다르다고 행하는 무차별적인 폭력은 절대로 용서할 수 없는 일이다. 

다크 투어는 자발적인 선택과 태도만이 의미가 있을 따름이다. 다크 투어를 통해 삶을 진지하게 숙고하고 자신을 변화하려는 작은 동력이라도 얻을 수 있다는 자각만으로도 충분하다. 간혹 개인의 익숙한 현실을 모독하기 위해 애도의 공간이나 암울했던 상황을 돌아보는 여행도 의미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우슈비츠로 끌려갔지만 살아남은 프리모 레비(Primo Levi)의 호소처럼 "그것은 일어난 일이다. 그러므로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이 점이 우리가 꼭 말해야 하는 핵심이다." 

AI 시대는 기억해야 할 과거도 없이 미래를 향하는 현재만이 있을 뿐이다. 인공지능 능력에 몰입되어 진정한 삶의 가치를 인식할 시간도 없이 미래의 꿈같은 전망을 향해 서둘러 나아가는 중이다. 세상이 변해도 과거 피해자와 희생자들의 존엄성 훼손이 얼마나 가혹했는지 직접 목격하고 기억하는 일은 최소한 공동체의 삶을 살고자 했던 사람의 책무이기도 하다. 아우슈비츠, 홀로코스트 기념비 공원(Holocaust-Mahnmal), 캄보디아 쯔응 아익, 보스니아, 노르망디 전투, 파리의 지하묘지인 카타꽁브, 팽목항 그리고 제주도에 붉게 물든 과거를 다시 떠올리고 바라보는 이유다. 조지 산타야나는 ‘과거를 기억하지 못한 자, 그 역사를 다시 살게 될 것이다’라고 전한다.  

수년 전 아우슈비츠를 다녀온 후 얼마 동안 말할 수 없는 슬픈 역사적인 공간에서 받은 잔혹함과 충격이 뇌리에서 쉽게 떠나질 않았다. 나치 학살에 관해 많은 정보를 알고 있었지만 직접 접한 희생자의 수많은 안경과 신발 더미 그리고 벽에 남겨진 죽음의 흔적을 확인하며 느꼈던 쓰라린 전율을 잊을 수가 없다. 그저 살아있음에 감사하고 일시적이지만 숙연함에 모래알 같은 밥을 삼켜야 했다. 최명란의 시 <아우슈비츠 이후>에서 아우슈비츠를 다녀온 그는 밥도 먹고 연애하는 일상의 평범한 일도 부끄럽고 신앙도 장난이라며 극단적인 괴로움을 토로한다. 사상가 아도르노는 아우슈비츠 이후에 서정시를 쓰는 것은 야만이라며 ‘사유 없음’도 일종의 공범임을 말하지 않았던가. 자기반성 없이 개념의 동일성이 반복될 경우 새로운 폭력과 희생은 불가피하게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이유인 것이다. 

◆주성열 교수
-파리 1 대학 예술철학 기초박사
-성균관대 공연예술 박사 수료
-모던 라이프 아트디렉터
-단국대 서양화과 겸임교수 & 산학연구원
-연성대, 극동대 호텔관광 외래교수

주성열  webmaster@travel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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