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껍데기 핥기: 체험으로서 여행
최근 소유안이 기획한 ‘이도소-빈 껍데기 핥기’라는 개인전에서 젊은 화가의 특이한 작품을 만났다. ‘빈 껍데기 핥기’라는 주제는 현 사회의 증상을 반영한 작업의 결과물로 보인다. 그가 선택한 소재로는 반려동물의 먹이라는 냉동된 흰쥐와 긴 목이 잘린 학의 이미지들로 일상의 평범함을 자극해 신선한 느낌을 받았다. 
특히 알맹이는 사라지고 껍질만 핥는 현실 상황을 직시하고 은유적으로 재현한 작품이 섬뜩하지만 흥미롭다. ‘빈 껍데기 핥기’라는 사유의 결과물이 전하는 메시지는 나르시시즘적인 증상과 파편적인 삶의 상황을 제시한다. 

이탈리아 영화감독 파솔리니는 알맹이로서 반딧불의 소멸이라는 문제의식을 역사적 테제로 선언한 바 있다. 서치라이트나 사나운 빛으로 인간적인 신호와 사유라는 알맹이인 미광이 소멸하면서 빈 껍질만 남았다는 주장이다. 그는 ‘예술과 시는 미광이다. 그것들은 에로틱하고, 유쾌하고, 창의적인 미광이다. 살아 있는 미광이며, 욕망이 육화된 시의 미광이다’라고 말한다.

여행이란 무엇인가? 
반딧불이처럼 약한 빛을 내는 알맹이를 떠올린다. 공동체의 금기와 명령이 사라진 이후 신자본주의라는 성과사회가 등장하고 개인은 독립된 주체로서 많은 자유를 얻었다. 그러나 개인은 각자도생과 성과 주체라는 상황에서 자기 착취로 소진되어 껍질만 남거나 파편화된 삶을 살고 있다. 
홀로서기라는 위기의식과 이기적인 태도로 삶의 곳곳이 인간의 존엄과 타자의 가치가 서서히 훼손되고 있음도 느낄 수 있다. 공동체의 진정성과 공동선이라는 알맹이는 서서히 사라지고 껍질만 남겨진다. 자신의 이익을 준거로 삼아 타자에 대한 배려가 빠진 독단으로 흐른다. 허술한 이익에도 홀로 서야만 하는 고립된 인간은 자존이라는 알맹이는 버리고 우울하게 껍질만 핥는다. 

초개인화 시대와 ‘여행의 나노(nano)화’라는 말이 등장했다. 
홀로 떠나는 여행이 보편화하면서 취향에 따라 개인별 맞춤 투어라는 체험형 위주의 여행 상품도 늘어났다. 취미여행, 힐링 여행, 참살이, 테마 여행 등 ‘욜로(you only live once)’라 불리는 자신만을 위한 여행이다. 
욜로(YOLO)는 '미래 일은 생각하지 말고 현재 자신의 행복을 위해 여행하라'라는 의미로 이해한다. 자신만의 행복 추구와 체험을 위한 여행이라지만 타자와의 거리 두기가 사라지면서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이 혼란 속에 놓인다. 타자의 시공간에 대한 리스펙트(respect)라는 사라지고 스펙터클(spectacle)이 대신한다. 내밀한 사적인 영역도 제의적인 공간도 탐욕적인 여행객을 위한 전시장소로 변용된다. ‘지속 가능한 여행’을 위해 ‘체험으로서의 여행’과 ‘경험으로서의 여행’에 관해 좀 더 고민해야 하는 이유다.

체험으로서의 여행의 확산은 극단적으로 개인화된 상황에서 나타난 과잉 현상으로 본다. 여행객의 요구는 다양해지고 개인적인 취향에 따른 체험을 추구하면서 나타난 유형이다. 재독 철학자 한병철의 진단에 따르면 ‘나르시시스트는 경험을 추구하지 않고 체험하고자 한다’라는 주장이다. 여행이 개인의 취향과 자기 자신만을 위한 체험을 위한 것이라면 타자와의 거리나 경계도 흐릿해진다. 타자와의 관계가 소실된다는 의미는 안정된 자아의 이미지도 형성되지 못한다는 점이다. 나르시시스트가 추구하는 체험형 여행은 자연을 포함한 모든 타자를 착취하거나 자신만의 세계 속으로 연장할 것이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자는 타자와의 대립을 통해 자신의 위치를 설정하는 것이다. 

여행을 공부하는 여행: 경험으로서의 여행
무심히 사색하는 여행은 성과 업무를 위해 치열하게 활동하는 삶과는 정반대에 있다. 이기적인 행위를 멈추는 순간 의미를 버리고 그냥 그렇게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세상과 마주하는 것이다. 여행은 가속화된 시간의 프레임에서 벗어나 자연의 시간에 몸을 맡기는 것이다. 혼란한 시간과 방향성을 잃어버린 생존의 시간이라는 위기에서 벗어난다. 추억의 시간은 대부분 타자라는 기다림과 느림의 공간에서 얻어졌다. 
여행의 본질은 그 어떤 정보 취합이나 기획된 상품도 성취할 수 없을 것이다. 단지 나 자신 안에 조용히 머무를 때 공부하는 여행이 될 것이다. 알고 있음을 확인하는 여행이나 지식 정보로 투명해진 것은 공허함을 가져올 뿐이다. 여행은 미지의 것, 가보지 않은 곳이란 타자에 대한 존중이며 탐험이다. 

경험하는 인간은 타자와 조용히 마주하는 것에 가치를 둔다. 
체험이 아닌 경험으로서의 여행은 이타적이다. 개인(person)이라는 말은 가면(persona)에서 그 어원을 둔다. 페르소나는 거리 두기를 통해 서로를 연극적으로 바라보면서 타자로부터 위안을 얻는다. 영혼을 모두 노출한다고 친밀함이 유지되는 것은 아니다. 어느 정도 심리적 거리를 두고 서로를 바라보는 태도에서 타자에 대한 존중의 가치는 의미를 얻을 것이다. 낯선 모든 타자와의 거리 두기의 시선이 요구되는 이유다. 
자유는 고립되어 홀로 있는 상태는 아니다. 독자적이면서 이기적인 체험보다는 오히려 타자와 함께함으로써 경험은 유통기한이 없는 즐거운 추억으로 남는다. 유효기간이 없는 추억의 감정은 불현듯 되살아나 원초적인 시간으로 안내한다. 

인공지능이 도래한 시대에 접근 불가능한 여행지를 발견하는 것은 어려울 것이다. 화가 이도소의 시각을 빌리면 이는 과도하게 조명된 공백의 권력이며, 상품으로 변형된 권력의 껍질이다. 새로운 시대가 아닌 새로운 위험에 직면하고 있다는 진단이다. 
관광(觀光)이 빛나는 것들을 바라본다는 의미라지만 사나운 서치라이트의 과도한 눈부심으로 반짝이는 상투적인 볼거리만 즐긴다. 여행지의 특수한 상황이나 거주자와는 상관없이 체험을 극대화하기 위해 과도하게 기획한다. 불손한 여행자의 이기적인 태도는 자신의 모든 감정을 발산하고, 지역적인 특성이 있는 연극적 제의마저 벌거숭이를 만들어 구경거리로 삼는다. 

개인의 존엄성을 스펙터클에 건네고 쇼윈도의 상품처럼 자신을 전시하며 새로운 아름다움을 회복할 수 있다는 믿음이 충만하다. 파솔리니의 마지막 영화 <살로>에서 인간은 어떤 경우라도 서치라이트의 잔혹한 빛으로 남김없이 지옥에 떨어진다는 것을 보여준다. 경험으로서 공부를 위한 여행의 진정한 가치는 반딧불이처럼 우리에게 신호를 보내는 미광, 즉 어둠에 묻힌 잔존으로서 영혼이나 몸짓 그리고 소멸하는 타자의 현실과 언어를 소중하게 경험하는 일이다. 
진리를 향한 비밀의 문을 열고 반딧불의 작은 불빛을 따라 귀하게 발견하던 진리의 가치를 다시금 소중히 다루는 태도만이 지속 가능한 여행의 필수조건일 것이다. 무한한 긍정이 부정을 부를 것이기에.

◆주성열 교수
-파리 1 대학 예술철학 기초박사
-성균관대 공연예술 박사 수료
-모던 라이프 아트디렉터
-단국대 서양화과 겸임교수 & 산학연구원
-연성대, 극동대 호텔관광 외래교수

주성열 교수  td@travel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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