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들어 첫 비행기를 탔다. 
코로나 펜데믹으로 작년까지 최소화됐던 국제선 탑승 기회는 벌써 1월, 첫 탑승을 하고 말았으니 올해는 많은 시간을 하늘에서 보낼 것 같은 알 수 없는 피곤함이 몰려온다. 

운이 좋은 것인지 한국 여행자가 많은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해외를 나가면 인연치곤 기가막힌, 우연치곤 버라이어티한 만남이 항상 발생하곤 한다. 

신께서 이야기꺼리를 만들어 주려는 것인지 취재 꺼리를 만들어 주려는 것인지 알 수 없으나 유독 필자에겐 예상 밖 만남이 많다. 

작년 이맘땐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한 재래시장을 여행할 때 80이 넘었지만 정정한 한국 노신사를 만나 자유여행의 행복을 누리는 이야기를 길거리에서 들은 바 있는데 아직까지 정식 인터뷰로 엮지 못한 게 '한'으로 남아 있다. 

이번엔 미국의 시골이다. 
미 서부 그것도 그랜드캐년 동네를 지나 ‘모뉴멘트 밸리’까지는 아직 1시간 가량 차량으로 더 들어가야 한다. 해는 이미 넘어 깜깜한 밤이다. 
내일 일정을 위해 주위에는 아무것도 없는 미국식 모텔의 숙소로 향했다. 간간히 스페인, 또는 멕시칸으로 보이는 투숙객 외에 아무도 없어 보였다. 

체크인을 위해 찾은 로비는 어두컴컴하여 공포스런 분위기까지 감돈다. 
직원에게 다가가 체크인을 하려하니 그 사이 시야에 들어오지 않았던 아시아계 남녀가 다가온다. 한국인 부부다. 어림잡아 50대 중반은 돼 보인다. 단 둘뿐이다. 
필자를 보더니 매우 반가운 목소리로 한국인임을 확인한다. 다소 당황스럽긴 하지만 반갑지 않을 이유도 없다. 

사연인 즉, 운전 중 경찰에게 잡혀 이른바 ‘과속 딱지’를 발부 받았는데 처리 과정을 잘 몰라 불안하고 초조한 상태라는 것이다. 

그의 불안감을 듣는 과정 중 짧은 시간에 두 어르신의(나이를 알게 됐으니 어르신이 맞겠다) 관계와 나이, 여행 이유, 여행 기간, 목적 등 왠만한 개인정보는 모두 알게 됐다. 한국인 특유의 자랑질이며 관계 설정의 초기 단계에 나타나는 자기 고백이다. 

정리하자면 이렇다. 
외관상으로는 50대 중반 정도로 보이나 실제 두 어르신은 부부며 이미 자식을 모두 출가 시키고 손자까지 봐버린 젊어 보이는 노부부다. 스스로를 60대 중반이라 했으니 노부부는 노부부다. 

벌써 둘이서만 미국 여행은 수차례며 렌트카에는 쌀과 버너, 김치 등 언제 어디서나 밥을 지어 먹을 수 있는 완벽한 상태의 자유 여행 부부다. 미국 여행 중이지만 영어 구사력은 크게 신경치 않고 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행의 불편함은 전혀 모르고 여행중이다. 

이번처럼 경찰에 잡히고 나면 기분이 좀 찜찜할 뿐 기분 좋고 행복한 여행중이다. 
 
차에 싣고 다니는 짐을 본 후, 왜 여행사 패키지 상품으로 여행하지 않는냐는 질문은 매우 멍청한 질문이 될 것 같아 거두고 잠을 청했다. 

다음날 이른 아침 옆방에서는 노부부가 짐을 챙겨 다시 여행길에 나서는 소리가 들렸다. 

2024년 한국의 베이비붐 세대의 여행법이다. 

이정민 기자  ljm@travel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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