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노르망디-라이언 일병을 찾아서
②노르망디-살상의 댓가
③노르망디-증오의 시간
원래 여행이라는 것은 새로운 것들을 만나기에 잠시 과거와는 단절이 일어난다.
새로운 풍경, 새로운 음식, 새로운 잠자리, 새로운 사람들 모든 것이 처음인 것 뿐이다.
정보통신이 발달해 사전 정보가 아무리 완벽해도 여행지의 낯설음이란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노르망디의 여행은 하루에 한 개 이상의 추억거리들을 소환한다. 이것은 낯설음과는 반대되는 것들로 이미 잊고 지낸 것들에 대한 소환이다.
◆살상의 댓가
전날 머물렀던 호텔 앞에 Jeep이 와 있다. 이젠 한국의 도로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외산 SUV 차량 브랜드지만 노르망디에서 마주한 Jeep은 시간을 빠르게 1990년 초반으로 데리고 간다.
Jeep을 타면 일단 춥다. 아니 타기 전부터 춥다. 대한민국 육군 군복을 입고 타도 춥고, 노르망디에서 다시 만난 Jeep을 타도 춥다. 확실히 군청색은 추운 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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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날 머물렀던 호텔 앞에 Jeep이 와 있다. |
1993년 에도 같은 모델의 Jeep을 탔다. 장소는 DMZ이다. 전방부대의 인사행정병이라 Jeep을 타고 DMZ 갈일 은 없었다. 하지만 당번처럼 돌아가는 인사장교의 전방 시찰로 인해 약해빠지고 남는 건 시간뿐인 인사행정병을 마치 자신이 고용한 매니저처럼 달고 가는 건 당시 군 간부들의 관행이었다. 덕분에 뒷자리에 앉아 들리는 부대마다 인사 받으며 마치 DMZ 투어라도 온 것 같은 기분 좋은 우월감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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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eep을 타면 일단 춥다. 아니 타기 전부터 춥다. |
그로부터 정확히 30년. 또 다시 Jeep의 뒷자리에 앉았다. 앞자리에는 다행히 별자리를 앞에 둔 인사장교가 아니라 노르망디 관광청의 친절한 직원이 앉아 있다. 연신 괜찮냐고 물어보고 모든 것이 좋다고 답한다. 비록 30년 전과 똑같은 모델의 Jeep이며 좌우가 뚫린, 바람이 씽씽 불어 들어오는 Jeep이지만 기분만은 완전히 다르다. 하지만 추운 건 똑같다.
노르망디 상륙작전 당시 독일군의 진지였던 벙커가 보존돼 있는 ‘Longues-sur-Mer’(롱그-슈흐-메흐)로 향한다.
한국의 DMZ같이 가파른 고도는 아니지만 완만한 고지대를 가로질러 가는 길은 꽤 낭만이 있다. 작은 읍내 같은 곳도 지나고 예쁜 시골 마을도 지난다. 여전히 바람 때문에 춥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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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르망디 상륙작전 당시 독일군의 진지였던 벙커가 보존돼 있는 ‘Longues-sur-Mer’(롱그-슈흐-메흐)로 향한다. |
Jeep 투어를 운영하는 업체에서 나온 운전자는 조수석 관광청 직원에게만 담요를 덮으라고 준다. 뒷자리는 보이지 않는 모양이다. 그럴것이 룸밀러가 없는 Jeep이다.
춥지만 벙커로 가는 길이 아름답다. 잠시 정차해 사진 몇 컷 찍고 싶지만 여전히 운전자는 뒷자리에 대한 관심은 없다. 오로지 조수석의 그녀와 “세.셀.송.메.멜.멩.젤.쟁.종” 굴러가는 듯 한 불어로 대화에만 집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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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일군 벙커까지 둘러보는 Jeep 투어 |
시야는 그야말로 탁 트였다. 상륙작전을 감행하는 입장에서는 최악의 장소다. 벙커에 올라보니 제 아무리 연합군이라 해도 그들의 이름까지 다 보일 정도로 시야 확보에 최적지다.
벙커의 단단함은 천년이 지나도 그 모양새를 그대로 유지할 수 있을 정도로 아직도 딴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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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월이 지나 이제는 녹슨 고철정도로만 예상됐으나 한 뼘 지름의 포구를 가진 포는 당시 독일군의 완벽함이 느껴진다. |
세월이 지나 이제는 녹슨 고철정도로만 예상됐으나 한 뼘 지름의 포구를 가진 ‘지대지(육지에서 육지로)’ ‘지대공(육지에서 하늘로)’포는 당시 독일군의 완벽함이 느껴진다.
하지만 준비가 아무리 완벽해도 의도가 ‘만행’이니 그 완벽함은 오랜시간을 버티지 못하고
약간의 바람에도 몹시 추워하는 한 동양 남자 앞에 녹이 슨 채로 놓여 있을 뿐이다.
더욱이 손도 작은 그 남자의 작은 한 뼘에 포구를 내어준 채 “대략 10센티...”라는 치욕을 감당하고 있다. 살상의 댓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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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뼘에 포구를 내어준 채 “대략 10센티...”라는 치욕을 감당하고 있다. 살상의 댓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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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은 읍내 같은 곳도 지나고 예쁜 시골 마을도 지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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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은 읍내 같은 곳도 지나고 예쁜 시골 마을도 지난다 |
◆증오의 시간이 다가 온다
골드비치에서 동쪽으로 조금씩 이동이다. ‘Longues-sur-Mer’(롱그-슈흐-메흐)에서 Arromanches-les-Bains으로 이동하면 이제부턴 상륙작전당시 영국군에서 맡았던 장소다. 골드비치(GOLD Beach)와 주노비치(JUNO Beach) 가운데쯤이랄까. 골드비치(GOLD Beach)는 영국군, 주노비치(JUNO Beach)는 캐나다군 담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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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골드비치(GOLD Beach) |
가벼운 점심을 마친 후 바닷물이 빠져다간 곳에 고정돼 있는 ‘해상벙커’에 다가가니 조개껍질과 미역 줄기가 휘감고 있다. 지금은 해상 쓰레기 정도로만 보인다. 흉물스럽다. 관광객을 위한다면 치워야 한다. 하지만 이것은 지극히 한국적인 사고다. 고철덩어리에도 배워야할 역사가 담겨있다. 노르망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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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상벙커’에 다가가니 조개껍질과 미역 줄기가 휘감고 있다. |
희생자를 추모하는 공간에도 각국의 표현방식이 모두 다르다. 거룩한 공간에 이런 표현이 다소 죄스럽지만 미국 메모리얼 파크는 스토리를 담고 있다. 영국의 추모 공간은 심심하다. 캐나다의 공간에는 발랄함이 있다. 저마다의 표현방식이다.
Arromanches-les-Bains에 있는 ‘British Normandy Memorial’은 야외 추모 공간으로 늘어선 기둥에는 희생자의 이름과 연령이 아로 새겨져 있다. 햇빛이 쏟아지면 기둥 사이사이로 규칙적인 그림자가 생긴다. 초(second)가 지날 때 마다 그림자의 위치도 한꺼번에 이동한다. 천재성이 발휘된 추모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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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륙작전당시 영국군에서 맡았던 골드비치(GOLD Beach)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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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ritish Normandy Memoria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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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외 추모 공간으로 늘어선 기둥에는 희생자의 이름과 연령이 아로 새겨져 있다. |
인근 주노비치(JUNO Beach)는 희생된 캐나다인 4만 5000여명을 추모하는 공간이 있다.
캐나다인 특유의 친절함이 뮤지엄 입구에서 방문객들을 맞이하고 있으며 야외에는 당시 사용됐던 지하 벙커도 둘러볼 수 있다. 추모공간이지만 찾아오는 이들에게 휴식을 제공하는 공원스러운 느낌이다. 대형견과 함께 산책 나온 주민은 펄쩍펄쩍 뛰어다니는 반려견을 전혀 제지하지 않는다. 반려견은 연신 흙바닥에 자신의 몸을 비벼대며 응석을 부린다.
80년 전 피로 물들었던 이 공간은 이제 파란 하늘과 초록의 잔디, 하얀 구름만이 떠다닌다.
붉은색이라고는 캐나다 국기의 메이플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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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노비치(JUNO Beach)는 희생된 캐나다인 4만 5000여명을 추모하는 공간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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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외에는 당시 사용됐던 지하 벙커도 둘러볼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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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모공간이지만 찾아오는 이들에게 휴식을 제공하는 공원스러운 느낌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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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캐나다인 특유의 친절함이 뮤지엄 입구에서 방문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
이곳까지 오면서 2차 세계대전의 시작자 ‘아돌프 히틀러’에 대한 언급은 거의 없었다.
그들에겐 희생자에 대한 추모와 감사가 먼저였다.
다음 행선지 ‘Caen’에서는 노르망디 투어에서 처음으로 ‘아돌프 히틀러’에 대한 구체적인 행적이 나온다. 증오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독일군 벙커 투어
https://bayeux-bessin-tourisme.com/
◆D-Day Museum (Le Musée du Débarquement)6월 정식 오픈
https://musee-arromanches.fr/en/
◆영국군 추모 공원 British Normandy Memorial with Mélanie
https://www.britishnormandymemorial.org/
◆주노 비치 센터
https://www.junobeach.org/
◆현장 영상 노르망디-3 동영상 보기
https://youtu.be/rzBRjoGPrE0
이정민 기자 ljm@travel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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